[시론]신우철/'총선 올인' 후유증 어쩌나

  • 입력 2004년 1월 30일 18시 13분


대한민국 반세기 정치, 아니 한민족 반만년 정치에서 언제 조용한 적이 있었던가. 총선을 앞두고 나오는 행정수도 이전 다짐, 병역복무 단축, 근로자정년 연장 등 연이은 선심성 정책들을 보니 올해도 혼란이 극심할 듯하다. 오죽하면 김수환 추기경이 29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면담에서 관권선거에 대해 공개적인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을까.

▼집권 2년째 총선 맞는 '유형IV' ▼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개혁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이라는 노무현 정부에서 왜 이런 구태가 되풀이될까. 헌법의 측면에서 풀어보자. 현행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 국회의원 임기를 4년으로 규정함으로써 대통령이 임기 중 총선을 맞는 유형이 4분돼 20년 주기로 순환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임기 1년차, 5년차에 두 번 총선을 치르는 유형I(노태우형), 임기 4년차에 총선을 치르는 유형II(김영삼형), 임기 3년차에 총선을 치르는 유형III(김대중형), 임기 2년차에 총선을 치르는 유형IV(노무현형)가 그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집권 1년차부터 형성된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할 수 없었기에 결국 ‘3당 합당’이라는 인위적 정계개편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취약한 지위는 원내에서 당내로 전이되기만 했을 뿐, 본질적으로 개선되지는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 4년차에 실시된 총선을 전후해 현직 대통령의 권력과 새로 등장한 대통령후보들의 권력이 충돌함으로써 급격히 약화됐다. 그것은 당시의 경제위기 및 뒤이은 수평적 정권교체에 한 원인이기도 했다.

16대 총선을 사흘 앞둔 2000년 4월 10일, 건국 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한반도 평화의 서곡이란 평가가 나왔지만, 헌법학자로서 필자의 눈에는 임기 한가운데의 총선에 집착하는 ‘유형III 대통령 김대중’이 비쳤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엇갈려 돌아가는 이 ‘4박자 미뉴에트’의 막장에 접어들었다. ‘유형IV 대통령’으로서 노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실패할 경우 임기의 대부분인 4년을 ‘노태우형’과 유사한 약체 대통령으로 보내야 한다. 단, 대선이 끝나자마자 총선을 치러야 했던 노태우 정부와 달리 총선까지 1년여의 여유를 가졌던 노 대통령은 총선용 전략을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형I’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최근 잇따른 총선 ‘올인(All-in)’ 전략의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에게 고언하고 싶다. 공공선택이론의 분석틀을 적용해보면 행정수도 이전, 병역복무 단축, 근로자정년 연장 등과 같은 정책은 ‘민주주의의 실패’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책의 이익은 단기간에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 반면 그 비용은 장기에 걸쳐 국민 전체에 분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모든 정책들이 나라의 백년대계로서 면밀히 검토된 결과인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차라리 예전처럼 ‘아름다운 패자’의 길을 가라고 권하고 싶다. ‘헌법의 미로’에 얽매여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선심성 정책 부담은 국민 몫 ▼

다가올 총선을 지휘할 ‘정신적 여당’의 당의장에게도 묻고 싶은 게 있다. 노태우 정부 임기 5년차에 14대 총선을 지휘했던 김영삼씨는 집권당 대통령후보가 될 것이 확실했다. 김영삼 정부 임기 4년차에 15대 총선을 지휘했던 이회창씨는 집권당의 대통령후보로 유력하긴 했으나 다른 ‘용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다. 김대중 정부 임기 3년차에 16대 총선을 지휘했던 이인제씨는 집권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낙마했다.

노무현 정부 임기 2년차에 17대 총선을 지휘하는 귀하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라도 총선 승리에 매달려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자문해볼 일이다.

신우철 영남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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