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안전보장 형식 설왕설래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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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대북 5자 안전보장의 문서화’ 원칙을 직접 밝혔지만 그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미국의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즉각 일종의 ‘합의(agreement with small ‘a’)’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조약(treaty)보다 낮은 수준의 미 의회 결의가 필요 없는 ‘합의’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미 대통령이 국무부에 문서로 대북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일종의 합의안(agreement)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이 거론되고 있다.

또 일본 교도통신은 21일 워싱턴발로 북한의 이근 외무성 미주담당 부국장이 9월 뉴욕을 방문했을 때 2000년 10월의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안전보장의 예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코뮈니케의 골자는 양국이 서로 적대시하지 않으며, 1953년 체결한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줄곧 공동 코뮈니케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10일 밝힌 다자안전보장안의 기본요건과 어긋난다. 파월 장관은 부시 행정부가 검토 중인 안전보장안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편지나 문건을 통한 보장보다 강력한 것이라고 확언했었다. 다시 말해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2000년 월리엄 페리 특사를 통해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불가침약속 서한이나 공동 코뮈니케 보다는 더 ‘강력’한 문서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는 미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현재 △다른 6자 회담 참가국들이 서명하는 대통령 선언(Presidential Statement)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참가한 우크라이나 모델 형식의 다자간 안전보장(multilateral security agreement) △북한을 포함시켜 전 참가국이 공식적으로 서명하는 일종의 협정(pact) 등이 검토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비교적 소상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부시 행정부가 안전보장안의 구체적 형식, 북한의 의무 이행에 대한 검증 방법, 문서의 효력 발생 전 북한이 이행해야 할 사안 등 세 가지 핵심 쟁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하스 “北 핵개발 포기 안하면 美 무서운 선택 할수도” ▼

리처드 하스 뉴욕외교협회(CFR) 회장은 21일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 될 경우 “미국은 무서운 방식(terrible options)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스 회장은 이날 뉴욕 주재 각국 특파원들과의 초청간담회에서 “미국은 북한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핵 위협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그 의도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에 따라 모든 방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에 ‘5자 안전보장’을 제안한 데 대해 “흥미로운 전환”이라고 평가한 뒤 “북한 지도부의 마음은 읽기가 거의 불가능해 북한이 다자 안전보장안을 수용할지, 핵개발 포기 의사를 밝힐지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스 회장은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장기적인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업무를 맡아오다 6월 민간 싱크탱크인 CFR 회장에 취임했다. 하스 회장은 국무부 재직 시절 중동 문제 및 북한과 이라크 등의 핵무기 확산에 대해 외교적 해법을 강력히 추구해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北 “좀더 기다려보자” 6자회담 시간벌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제시한 ‘다자틀 내 안전보장’에 대해 북한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 중앙방송은 21일 논평에서 “우리는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와 조-미 불가침 조약의 체결을 요구했지 그 무슨 안전담보를 요구한 적이 없다”며 “미국이 우리의 핵 포기를 전제조건으로 다자틀 안에서 그 무슨 안전보장을 해준다는 것은 실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가소로운 짓”이라고 비난했다.

방송은 또 “미국이 진실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자회담을 바란다면 대조선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불가침 조약을 체결할 정치적 의지부터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이 나름대로 북한이 느끼는 안보위협에 대해 ‘성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북-미 불가침 조약 체결이라는 종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반응은 아직 2차 6자회담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은 21일 미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라며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이 미국의 이번 제안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한 가지 변수는 중국의 역할이다. 중국의 2인자인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방북이 연기되고 있지만, 조만간 북-중간 고위급 협의가 이뤄질 경우 6자회담의 재개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또 6자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한미일의 실무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다자틀 내 안전보장’ 구상에 북한을 끌어들일 유인책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부시 대통령의 제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물을 담느냐가 2차 6자회담 재개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2차 6자회담은 조속히 개최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며 “한미일 3국간 충분한 사전 준비를 통해 북한과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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