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국 후보위원 아니다" 송두율 밝혀

  • 입력 2003년 10월 2일 14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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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연합]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연합]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59)는 2일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통보받거나 활동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송씨는 이날 “남북을 동시에 사랑하고 동시에 비판하려는 저의 삶과 철학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준데 대해 자성하고, 국정원에서의 진솔한 얘기가 일부 왜곡 보도됐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면서 “저는 양심을 걸고 노동당원으로 의식하고 활동해온 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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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당시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주체사상 교육과 노동당 입당이 불가피한 통과의례였다”면서 “30년 전 평양방문은 현재 저의 뇌리에 전혀 남아있지 않을 만큼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충성서약문에 대해서도 "언론에 보도된 충성서약문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자성적 성찰’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는 성명서에서 “양심적인 학자에서부터 거물간첩으로 추락하는 저의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다”면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설명했다.

△첫째(北을 방문하게 된 경위와 관련) : 1973년 여름 처음 北을 방문했을 당시 南은 유신체제로 암울한 상황이었으나, 북한은 독일과 서구학회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나라로 평가하고 있었기에 조국의 다른 한쪽인 북을 직접보고 학문적 탐구를 하기 위해 방북했다.

△둘째 : 노동당원으로 의식하고 활동해온 바가 없다.

남한에서도 출국 때 소정의 소양교육을 받는 것처럼 당시 북한 입국 때도 주체사상 교육과 노동당 입장은 불가피한 통과의례였다.

△셋째 : 노동당 정치국 위원으로 통보받거나 활동한 적이 없다.

일부에선 북한 권력서열 23위의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해온 것으로 생각하는데 후보위원을 수락하거나 활동해온 바가 없다.

74년7월 김주석 사망시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도 송두율로 참석했지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북도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독일국적 취득자였기 때문에 (이런 논란은)아무런 의미가 없다.

△넷째 : 북으로부터 돈을 받긴 했지만 공작금은 아니다

북으로부터 92~94년까지 매년 2~3만불 정도 총 6~7만불과 왕복교통 항공비 2만불 등 모두 8~9만불을 받았다.

그러나 이 돈을 공작금이나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독일 한국학술연구원을 되살리기 위한 경비로 사용했다.

운영자금은 필요에 의해 북에 요구해서 받았다.

15~20만불을 공작금으로 받았다는 보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다섯째 : 충성서약문을 쓴 적이 없다.

북은 공화국 창건일 등에 축하문을 많은 해외인사들에게 요구한다.

이런 관행에 따라 글을 썼으나 이는 남에서 형식적인 축전이나 조문을 보내는 것과 같다.

충성서약문을 썼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내용도 국가 경축일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여섯째 : 이번 조사과정에서 이뤄진 오길남씨와의 대질신문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알려진 것처럼 오씨의 입북을 권유한 적이 없고, 그가 탈북한 후 재입국을 권유하거나 협박한 적이 전혀 없다.

지금 이 순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입북을 권유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일곱째 : 1995년부터 해마다 5차례에 걸쳐 북경, 평양에서 열린 남북학술통일회의가 북의 공작에 의해서 성사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처음부터 남측 연구단체가 제안하고 본인이 중간에 서서 북에 입장을 전해 남북학자가 공동으로 개최한 모범적 학술회의이다.

이 학술행사에서 가교 역할을 했을뿐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저의 행적이 한국의 시각으로 보면 북에 치우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한때는 북한사람을 만나거가 손만 잡아도 접선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최근 남북한의 화해 모습은 이제 과거의 양분법적 시각만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화해자로 살고자하는 저의 신념과 지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치우친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는 “노동당 입당 등의 문제에 대해 민주화운동에 애쓴 분과 국민들께 깊이 사과한다”면서 “제가 여러 의혹이 난무하는 속에서 그리고 처벌받을 수 있는 상태에서 가족과 함께 남한 사회로 귀국한 진의를 살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실증법적인 처벌을 받을 상황이 있으면 감당해서, 한국사회의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참여자가 돼 남북 모두를 끌어안는 화해자로서 남은 삶을 살고 싶다”면서 “국민여러분께서 받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끝맺었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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