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감사원장 인준부결과 新4당체제

  • 입력 2003년 9월 28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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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당초 예정에 없던 회견을 갖고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에 국회가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당초 예정에 없던 회견을 갖고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에 국회가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26일 윤성식(尹聖植)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아무도 진심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라며 당혹스러워 하는 반응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까지 나서 임명동의안 통과를 당부했다는 점에서 무난한 표결처리를 예상했던 청와대측은 큰 충격에 빠졌고 야당인 한나라당 지도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윤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파문은 신(新)4당 정국에서 ‘여당 실종 사태’ 속에 표류(漂流)하는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례라는 점에서 정치권 안팎의 우려를 사고 있다. 특히 이라크 전투병 파병문제 등 국익과 직결된 현안들마저 자칫 상황에 떼밀려 아무도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높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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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기자회견이 역풍(逆風)을 불렀다?=25일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협조를 요청하는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당일 아침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노 대통령이 관저에서 집무실로 출근하자마자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을 찾아 “내가 직접 국회와 국민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뜻을 밝혔으면 좋겠는데, 어떤 형식이 좋겠느냐”고 상의한 뒤 곧바로 기자회견을 결정했다는 것. 청와대 기자실에 기자회견 일정을 통보한 시점도 회견 시작 20분 전인 오전 9시20분경이었다. 이날 아침 ‘감사원장 후보자 동의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언론보도가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기자회견이 역풍을 불렀다”고 반발했다. 노 대통령이 야당을 상대로 한 치밀한 사전 설득 노력 없이 불쑥 기자회견을 연 것이 국민 여론을 업은 ‘야당 압박전략’으로 비치면서 오히려 당내 기류를 거꾸로 몰고 갔다는 게 한나라당측 주장이다. ‘안풍(安風)’ 사건 등으로 민감한 시점에서 당 지도부가 찬성 표결을 유도할 경우 자칫 노 대통령의 발언에 ‘편승’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었던 점도 당지도부의 운신의 폭을 제한했다.

노 대통령은 회견 후에야 뒤늦게 문 실장 등을 통해 야당 지도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도록 했다.

이만섭(李萬燮) 전 국회의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사안의 성격상 자유투표를 할 수밖에 없고, 자유투표를 하면 당연히 부결될 수밖에 없었다”며 “이를 모른 채 안이한 낙관에 빠져 있었던 청와대의 정치력 부재가 문제였다”라고 지적했다.

▽‘그날엔 정치가 없었다’=여당이 실종된 국회에서도 책임지고 윤 후보자에 대한 찬성 표결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없었다.

통합신당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는 표결 후 “부정적 분위기 때문에 우려했으나, 상식에 맞게 처리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밝혀 당 차원의 적극적 노력이 없었음을 시사했다. 심지어 당일 본회의장 내에서는 신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남의 일처럼, “민주당 입장은 뭐냐”고 묻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도 “학연(광주일고-고려대)과 지연(호남 출신)으로 연결된 의원들의 자발적인 협조 요청 전화는 있었지만 청와대나 통합신당 쪽의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는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이 28일 논평에서 “민주당은 당시 국회 표결에 4명만 불참한 반면, ‘정신적 여당’을 내세우는 신당파는 11명이나 불참했다”며 “그러면서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25일 저녁 실시한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현재 여당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민주당이 28%로 가장 많았고,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은 24%대로 비슷하게 나왔다. 국민들 눈에도 국회가 여당 실종 상황으로 비친 셈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책임의 일단을 면키 어렵다는 비판이 만만찮다. 윤 후보자에 대한 결정적 ‘흠결’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국정 안정을 위해 노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는 성숙된 모습이 아쉬웠다는 지적이다.

통합신당의 김덕규(金德圭) 의원은 “다수의 힘을 가진 정파가 그 힘을 잘 못 쓸 경우엔 칼날이 자신을 벨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이라크 추가 파병 처리문제의 경우 정부와 국회간 의견 조율 과정이 훨씬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한미 정부간 실무협의를 구체화하며 사실상 파병 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이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파병에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정당간, 소속 의원간 의견 수렴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의원은 “파병문제에 대해선 같은 정당 소속 의원들간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데다 사실상 여당인 신당 내에선 파병반대론자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이라며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의 결정과 이를 국회에서 관철키 위한 정치적 설득과정이 더욱 정교하고 치열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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