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철승/6·15합의는 ‘퍼주기’만 남겼다

입력 2003-06-12 18:29수정 2009-10-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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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5일 김대중씨는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혈세를 마구 퍼주고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샀다. 이 결과 나온 것이 6·15 남북공동선언이었다. 6·15 선언의 제1항인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自主)’는 남한에서 반미와 미군철수 운동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 제2항인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를 통합한 통일방안은 남한에서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김일성의 연방제를 실현하기 위한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헌법 4조에서 규정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 그리고 유엔에서 결의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정통성이 북한에 의해 가처분 당한 격이 되었다.

그 후 김정일과 김대중씨는 6·15 합의를 실천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해왔다. 김정일은 이제 마음 놓고 핵개발과 주한 미군철수, 그리고 위장 평화공세의 강도를 높이면서 자신의 실정으로 인한 북한의 경제파탄을 극복하기 위해 남한을 현금 쌀 그리고 비료 등을 훑어내는 병참기지로 삼고 있다.

특히 지금 특검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듯이 김대중씨는 정상회담을 위해 5억달러 이상을 북한에 몰래 보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와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토록 해 이라크전쟁 후 한반도를 세계 최대의 화약고로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엔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제거와 김정일 체제 붕괴를 위한 실현 가능성 있는 여러 대책을 심각히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구체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대화와 평화적 방법만을 구두선(口頭禪)으로 외치고 있다. 안보태세 확립 없이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6·25전쟁 참변을 통해 경험한 우리 국민은 불안해하고 있다.

김대중씨의 햇볕정책과 6·15 합의는 6·25전쟁 이후 최대의 무력침범 사건인 ‘6·29 서해무력침범’과 그로 인한 우리 장병 20여명의 사상(死傷)을 가져왔다. 이에 대해 김대중씨는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를 받아내기는커녕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면죄부를 주면서 금강산관광을 지속시켰다. 또 자신은 월드컵 결승 구경을 간다며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사건 1주기가 다가온 지금에도 서해에 수장된 젊은 영혼들은 김대중씨와 김정일을 원망하며 서해를 떠돌고 있을 것이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거국적인 위령제를 지내야 할 것이 아닌가.

6·15 합의는 1991년 남북교류와 군비통제까지 구체적으로 합의한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과 비교할 때 북한의 남한 적화책동을 수용한 데 불과한 것으로 반국가적인 것이다.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만 준수해 간다면 지금 초미의 관심사인 북핵 문제도 쉽게 해결될 것이다.

김대중씨의 햇볕정책을 승계한 노무현 대통령도 집권하자마자 6·15 선언 실천에 끌려가고 있다. 노 대통령은 6·15 합의 3주년 행사를 허용해서는 안 되며, 반국가적인 6·15 합의를 하루속히 폐기하고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돌아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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