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노대통령 '국회관' 정조준

  • 입력 2003년 4월 27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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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 임명 과정에서 드러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회관'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이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부적절' 의견에도 불구하고 고 원장 임명을 강행하면서 국회 청문회의 검증 절차를 '인격 모독'으로 몰아붙이고, 국회의 '월권'을 지적한 대목을 문제 삼은 것.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은 27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3권 분립의 생명은 견제와 균형인데,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 국회를 보는 눈"이라며 "노 대통령이 국회의 처사를 비난한 것은 국회 위에 군림하겠다는 대통령의 독선이자, 독단"이라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국회 경시' 태도가 국회의 청문회 결정을 거부한 것보다 더 심각한 갈등 요인이 될 것이란 경고도 뒤따랐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국회관'을 문제 삼은 배경엔 대여 공세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고 원장의 이념적 편향성 공세에 매달릴 경우 한나라당도 자칫 '색깔론'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여야 합의에 의한' 국회 정보위의 의견이라는 도덕적 명분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두 가지 방향에서 공세 포인트를 잡았다.

첫째는 1988년 13대 국회의 5공 청문회 '스타'였던 노 대통령이 이번 국회의 인사청문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점이다. 노 대통령이 당시 5공 청문회 증인들을 상대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치밀한 논리와 공세적 질문을 펼쳐 일약 전국적 '스타'로 우뚝 선 사실을 상기시켰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노 대통령은 당시 5공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연로한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회장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며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에게는 명패를 집어던지는 과격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며 "질문의 본질과 무관한 이러한 행동이야말로 '모욕으로 사람을 제압하려 한 것'으로 이제 와서 '국회의 인격 모독'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또 하나는 노 대통령의 국회 존중 약속이 결국 '입발린 소리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후 노 대통령은 줄곧 야당에 대해선 '대화와 타협', 국회는 존중하겠다는 지론을 펴왔다.

박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고건(高建)국무총리 임명동의안과 이라크전 파병동의안 등에 초당적으로 협력했다"며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국회 존중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여야 청문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부적절 판정을 내린 고영구씨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하는 오기와 배신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여권을 대응을 지켜보며 인사청문회법 개정 등을 시작으로 투쟁 수위를 높여간다는 전략이다.

이에 민주당 이평수(李枰秀) 수석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나라당의 오만한 '의회독재'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정치문화 창출에 힘과 지혜를 모으고 있는 나라와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냉소를 받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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