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망명설 北 핵과학자 경원하박사 행적

  • 입력 2003년 4월 21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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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65년 졸업앨범의 경원하 박사. -사진제공 강원대
강원대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65년 졸업앨범의 경원하 박사. -사진제공 강원대
지난해 10월 시작된 미국 주도의 비밀공작을 통해 서방 국가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핵 과학자 경원하(慶元河·75) 박사의 과거 행적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고향이 신의주인 경 박사는 6·25전쟁 당시 평양에서 나중에 부인이 된 황임송(黃任松·68)씨 가족과 함께 월남, 대구의 미국공보원(USIS)에서 북한의 방송을 분석하는 일을 1년 정도 하다가 서울 용산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송씨의 조카로 용산에서 같이 살았던 황충경씨(66)에 따르면 경 박사는 김일성종합대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과외교사를 하다 임송씨 가족을 알게 됐다. 그러다 임송씨와 사랑에 빠진 경 박사는 51년 1·4후퇴 때 아버지와 형을 평양에 남겨둔 채 임송씨 가족을 따라 월남했다는 것.

경원하 박사(원안)가 강원대의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재직 중 동료 교수들과 회식을 하고 있다. 65년 춘천농대 졸업기념 앨범에 수록돼 있다. -사진제공 강원대

임송씨 가족은 일제강점기부터 장사를 해 돈을 모았으며 어머니 채모씨와 임송씨 등 5남매가 모두 1·4후퇴 때 월남했다고 충경씨는 전했다.

충경씨는 “경 박사는 175㎝ 정도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눈은 작았으나 인상이 부드럽고 매너가 좋았다”며 “임송 고모의 어머니(경 박사의 장모)도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임송씨는 서울에 온 뒤 풍문여고에 들어가 55년에 졸업했다. 그는 그 후 곧바로 경 박사와 결혼해 딸 미아와 희아를 낳았다.

월남 전 평양에서 김일성종합대 공대를 졸업한 경 박사는 51년 월남 후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로 임관, 56년 대위로 전역할 때까지 진해 등에서 교관생활을 했던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김일성종합대에서 수재로 통했던 경 박사는 이북 출신 고위급 인사를 여럿 알고 있었다고 충경씨는 전했다. 이 중엔 평북 출신으로 나중에 대통령경호실장을 지낸 홍종철(洪鍾哲)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 박사는 전역 후 56년부터 강원 춘천시에 있던 춘천농과대학(강원대 전신)에서 교편을 잡았다. 처음엔 시간강사로 수학 통계학 등을 강의하다가 61년 전임강사로 승진했다. 65년 춘천농대 제15회 졸업앨범에도 경 박사의 사진이 실려 있다. 59년 춘천농대에 입학해 경 박사로부터 수학을 배웠다는 L씨(전 강원대 교수)는 “경 박사가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뒤 월남해 춘천에 정착, 결혼을 하고 부인도 춘천농대에 1년 정도를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 박사는 남한에 있는 동안 북한을 그리워하지는 않았으며 반공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고 충경씨는 회상했다. 그러나 경 박사는 춘천농대 근무시절 가까운 친척과 술자리를 하면서 “남한 사회가 부패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경 박사는 65년 브라질 상파울루대로 유학을 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 박사는 이어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국립 로스앨러모스연구소에서 핵폭탄 제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무기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캐나다 맥길대에서 핵폭발장치와 관련된 구면폭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 박사가 캐나다로 옮겨간 뒤 임송씨는 어머니 채씨에게 가끔 안부편지를 보냈는데 74년부터 갑자기 편지가 끊겼다. 충경씨는 “마지막 편지에서 임송고모는 어머니에게 ‘먼 훗날 통일이 되면 만납시다’라는 글을 남겼다”며 “그때 이후 연락이 두절돼 가족들은 경 박사와 임송고모가 북한에 간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평양에 남은 경 박사의 친형이 이들의 입북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경 박사의 장모 채씨는 4, 5년 전에 숨졌으며 임송씨의 오빠와 여동생이 각각 경기 고양시 일산과 서울 용산에 살고 있다고 충경씨는 전했다.

춘천=최창순기자 cschoi@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경원하 박사 관련 일지
시기내용
1928년평양 출생
김일성종합대학 공대 입학(평양에서 중고교 졸업)
1951년1·4후퇴 당시 과외 제자인 황임송씨 가족 따라 서울 용산으로 피란
1951∼1956년해병대 소위로 임관해 대위로 전역. 진해 등에서 교관생활
황임송씨와 결혼
두 딸 미아 희아 서울에서 출생. 용산에 출생신고
1964년춘천농과대학(강원대 전신)에서 수학 등 강의
1965년브라질 상파울루대에 교환교수로 유학가기 위해 부인과 두 딸 데리고 출국
미국 뉴멕시코주 국립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핵폭탄 제조에 참여
캐나다 맥길대에서 핵폭발장치인 구면폭발 주제로 박사학위 취득
1974년부인 황임송씨, 서울에 사는 어머니에게 ‘먼훗날 통일 되면 만납시다’라는 편지를 보내고 연락 두절. 경 박사 일행 입북해 북한 핵개발 참여 추정
2002년 10월경 박사 등 일행 20여명, 미국 등 서방으로 망명했다고 호주 언론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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