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盧-DJ 만나는 것도 좋지만

  • 입력 2003년 4월 21일 18시 32분


코멘트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만나 국정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 자체를 흠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늘 청와대 만찬회동은 뒷맛이 개운치 않을 것 같다. 4·24 재·보선을 이틀 앞둔 민감한 시점이어서 선거용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대표가 공식적으로 호남소외론의 실체를 인정하고 호남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과도 맞물려 이번 회동은 정치적 의심을 살 만한 소지가 작지 않다.

물론 청와대나 여당은 선거용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이리 꼬이고 저리 뒤틀려 오래 전에 순수성과 신뢰를 잃어버린 정치판의 이 같은 생리를 여권 또한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여권이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 출범 후 첫 공직선거인 이번 재·보선에 여야가 과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과열·혼탁선거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회의원후보를 뽑기 위한 지구당대회에서부터 돈봉투를 돌리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중앙당의 밀어붙이기식 공천이나 계파간 나눠먹기 등 여야의 후보선정 과정도 종래와 달라진 게 없다. 거기에 전 현직 대통령까지 간여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선거후유증이 더욱 심각할 것이다.

‘잘못된 선거’ 때문에 재·보선이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재·보선에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정치권이라면 애당초 정치개혁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 사실 선거개혁 없는 정치개혁이란 기대할 수도 없다. 또한 16대 국회 마지막 재·보선마저 편법과 반칙이 난무한다면 내년 총선은 보나마나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재·보선이 공명하게 치러지는지 ‘호랑이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부터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는’ 것과 같은 오해받을 일을 피해야 한다. 다음달 미국 방문을 앞두고 조언을 구하려는 것이라면 재·보선 후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나도 되는 것 아닌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