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정계개편 전주곡…"與野 촉각

  • 입력 2003년 4월 13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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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이 심상치 않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근거지인 영-호남 지역민심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자 발등에 불이 붙었다. 여권 내부에선 ‘호남소외론’을 둘러싸고 신구주류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고, 한나라당 내에선 그동안 ‘무풍지대’나 다름없던 영남권에 이상기류가 감지되자 ‘호남소외론’ 확산이 여권의 영남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가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각 당의 텃밭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전초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민주 호남소외론 시각차▼

▽‘호남 소외론’을 들여다보니=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광주 95.2%, 전남 93.4%, 전북 91.6%의 득표를 했다. 15대 대선 때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득표율과 비슷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권 내 시각차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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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과 그의 ‘386 참모’들은 영남 출신인 노 대통령에 대한 호남 유권자의 전폭적 지지를 ‘지역 구도 혁파와 정치 개혁 실현을 향한 열망’으로 평가한다. 정찬용(鄭燦龍) 대통령 인사보좌관이 12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까지 지역감정을 조장한 것은 주로 영남 정치인이었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호남지역의 일부 정치인이 지역감정을 악용하고 있다”며 당내 일각에서 제기하는 ‘호남소외론’을 정면공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보좌관은 ‘일부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광주에서 2, 3명의 의원이 (호남소외론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민주당 구주류가 중심이지만 구주류가 전부는 아니다”고 답변했다.

반면 민주당 내 구주류 및 호남 출신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가 아니었으면, 호남에서 DJ만큼의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겠느냐”고 반박한다.

한 중진 의원은 “당내 호남 출신 신주류 의원도 주요 인사나 국정 운영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며 “청와대측이 호남주민의 정치적 명분과 현실을 정확히 분석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호남소외론’의 바탕에 깔린 정치공학적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

한 핵심당직자는 “여권이 민주당 구주류를 향해 지역감정 조장자로 정면 대응할 경우 영남지역에선 ‘현 정부가 호남일색이 아니다’란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며 “반DJ 정서로 한나라당을 선호했던 영남지역 정서가 바뀔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서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이 ‘민주당 해체-영남권 약진-개혁세력의 결합’을 주축으로 한 여권의 다단계 정계개편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민주당 영남표 공략▼

▽‘영남 대회전’ 앞둔 기싸움=내년 총선을 앞둔 노 대통령과 신주류 개혁파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민주당 불모지인 영남지역 공략이 가능할까’에 맞춰져 있다.

실제 민주당 개혁안 중 신구주류간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는 ‘지구당위원장직 폐지’ 조항도 ‘호남지역 구주류 의원 퇴출용’이 아니라, ‘영남지역 원외지구당위원장 물갈이용’이라고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전했다.

이미 TK(대구 경북)지역에선 이강철(李康哲) 대통령 정무특보 내정자가, PK(부산 경남)지역에선 노 대통령의 측근인 신상우(辛相佑) 전 국회부의장과 정윤재(鄭允在) 부산 사상지구당 위원장이 인물 영입 및 조직 정비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11일 부산에서 지역 원로모임인 ‘개혁과 통합을 위한 국민연대’가 발족한 것이나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때 민주당측이 당원이 아닌 이재용(李在庸) 전 대구 남구청장을 ‘당내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추천한 것은 광범위한 영남권 인재풀을 확보하기 위한 기반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귀띔이다.

이런 민주당의 ‘동진(東進)’ 움직임에 영남권 한나라당 의원들은 초조한 모습이 역력하다. 부산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한나라당이 과감한 물갈이 등을 통해 당의 분위기를 일신하지 못하면 부산의 전체 17석 중 5, 6석은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곤혹스런 여야 지도부▼

▽여야 지도부의 고민=민주당 지도부는 ‘호남소외론’ 논란이 자칫 당 개혁 논의의 초점을 흐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신기남(辛基南) 천정배(千正培) 의원 등 강성 개혁파 의원들은 “당 개혁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고, 변질되거나 좌절되면 신당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현재의 신당 논의가 결과적으로 ‘호남 떨어내기’란 인상을 줄지 모른다는 점에서 고민하고 있다.

신주류인 이재정(李在禎) 의원은 “정치권이 ‘호남 소외다’ ‘그렇지 않다’란 차원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신당 추진은 새로운 오해와 분란만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특히 신주류 내 당권파인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이 당 개혁안의 강행 처리와 신당 추진 등에 모두 부정적이어서 신주류 내부 갈등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한편 영남권 이상기류는 한나라당의 당 대표 경선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전국적 총선 승리를 위해선 지난 대선 때 참패한 수도권의 지지세를 만회할 적임자가 당 대표가 돼야 한다는 ‘명분론’과 영남지역을 다잡을 ‘영남 대표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핵심당직자는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선 내년 총선승리를 어디에서 이끌어 낼 것인지를 놓고 누가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펴는지에 승패가 걸려 있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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