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달러 기획폭로' 의혹 증폭]“김한정 前부속실장도 同席”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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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20만달러 수수설’ 폭로에 김한정(金漢正) 전 대통령부속실장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설 의원의 폭로가 청와대의 조직적인 ‘정치공작’ 차원에서 이뤄진 게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김 전 부속실장은 31일 “설 의원의 폭로 직후 김현섭(金賢燮) 당시 대통령민정비서관이 설 의원에게 미안해하며 ‘설 의원을 만나는데 같이 가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달라’고 하기에 모임에 함께 간 일이 있다. 거기에 김희완(金熙完)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4자 회동’은 설 의원과 김 전 비서관 등이 김 전 부시장에게 ‘20만달러 수수 의혹’을 뒷받침할 증인을 소개해줄 것을 요청하는 자리였다.

이런 모임에 대통령부속실장까지 동석했다는 것은 설 의원의 폭로가 김 전 비서관보다 ‘윗선’에 의해 기획, 조정된 것이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부속실장은 청와대 내에서도 오직 대통령의 지시만 받는 요직이라는 점에서 당시 폭로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의지와도 무관하지 않게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을 만하다.

김 전 부속실장은 지난해 최규선(崔圭善)씨 문제가 처음 논란이 됐을 때 김 전 비서관에게 최씨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부속실장은 “당시 부속실에 근무하던 L국장을 통해 최씨의 소재를 파악해 관련 업무담당자인 김 전 비서관에게 소개해 줬으나 그 후의 일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관은 이후 최씨와 10여차례 전화접촉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를 둘러싼 의혹을 ‘축소’하도록 종용하면서 “한나라당과 거래 내용을 말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게 최씨 측근들의 얘기다.

당시 전화통화에서 김 전 비서관은 최씨의 신변안전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홍걸씨의 보호에만 치중하는 인상을 주는 바람에 최씨와의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씨는 마지막 통화에서는 김 전 비서관과 언쟁까지 벌였고 이에 반발해 홍걸씨에게 돈을 줬다는 기자회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김 전 부속실장은 ‘20만달러 수수설’을 폭로한 설 의원과는 인척관계. 김 전 부속실장과 김 전 비서관은 또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언론인 출신인 김 전 비서관은 박 전 비서실장에 의해 청와대 비서관으로 기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측은 이번 사건에 관련된 전직 청와대 ‘실세’들이 모두 김 전 대통령과 박 전 비서실장을 정점으로 특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들어 “당시 청와대 최고위층이 20만달러 수수설을 쟁점화하는 공작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도 “당시는 홍걸씨의 ‘최규선 게이트 연루설’이 커지고 있어 청와대가 이를 차단하기 위해 부심하던 상황이었다”며 “뭔가 국면전환용 소재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20만달러 수수설, 노 대통령 책임론 제기▼

한나라당은 31일 ‘20만달러 수수설’에 대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민주당 대통령후보시절 발언을 상기시키며 노 대통령의 책임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시절인 지난해 5월 29일 인천 부평 정당연설회에서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이 최규선씨를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런 윤 의원을 조사하지도 않는다’고 말해 설훈(薛勳) 의원의 거짓 주장이 사실인 양 뒷받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설 의원을 즉각 사퇴시키는 것이 노 대통령이 밝혀온 낡은 정치, 공작정치 청산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5월 15일 ‘6·13지방선거 중앙선대위 발대식’에서 당시 노 후보가 한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노 후보는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에 대해 “검찰이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회피하기에만 급급해 민주당과 청와대만 몰아붙이고 있다”며 “이회창(李會昌) 후보 주변의 금품수수 의혹과 최규선 접촉 의혹이 있는데, 그런 것도 함께 끝까지 수사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한나라당 오경훈(吳慶勳)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설 의원의 허위 폭로를 기정사실화하며 거칠게 검찰의 수사를 촉구했던 발언”이라며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노 대통령이 권력 핵심부가 총동원된 폭로극의 진상을 사전에 인지했던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또 오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끝까지 수사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상기해 직접 나서 입장을 밝히고 검찰에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엄중 처벌을 지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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