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 앞으로 5년 60일에 달렸다]<2>정책결정은 이렇게

  • 입력 2002년 12월 25일 18시 46분


본보 대통령직 인수위 운영방안연구팀의 최평길 교수가 최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베키 던롭 헤리티지재단 부회장에게서 미국 인수위 활동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본보 대통령직 인수위 운영방안연구팀의 최평길 교수가 최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베키 던롭 헤리티지재단 부회장에게서 미국 인수위 활동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정권 인수는 정책과 인사, 조직 등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 인수는 전임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과 대통령당선자가 선거 기간에 제시한 비전 및 공약을 접목시켜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

인수위가 맞닥뜨리는 첫 번째 과제는 선거 때 제시한 공약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당선자가 선거 때 밝힌 공약을 그대로 추진할 경우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수위는 선거 공약 중 정책 우선과제로 선정할 부분과 수정할 대목, 또는 폐기해야 할 항목 등을 결정해 새 정부의 내각에 제공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공약은 이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특히 경제 공약은 계층별로 민감한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를 추진하지 않으면 공약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거나 국가안보 문제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와 관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대통령 선거운동은 안보나 국제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단순한 흑백 이슈로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서에 편승해서 제시한 공약이나 특히 국가생존과 직결되는 공약은 당선한 뒤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안보 정책에 있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인수위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인수위는 전임 정부의 정책을 파악해 이를 당선자의 정책 공약과 대비하고 계속해서 추진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가 정책은 대개 순차적, 점진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전임 정부의 정책을 180도로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전임정부의 정책을 과감히 폐기, 수정해야 할 경우도 없지 않다. 경제공황 타개를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하면서 2주에 1건 꼴로 법률안을 통과시킨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그 좋은 예이다.

정책 인수를 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과거 인수위는 전임 정부의 장차관 등 고위 관계자들을 인수위로 불러 업무보고를 받는 방식을 택해 왔다. 그러나 부처별로 업무보고를 받는 것으로는 전임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그 때문에 미국은 인수위의 분야별 정책 전문가가 직접 부처를 방문해 브리핑을 받거나 업무를 직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인수작업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각 부처를 방문하는 인수위 인사는 ‘점령군’처럼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지침도 마련해 놓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권인수 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베키 던롭 헤리티지재단 부회장은 지난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인수위는 외치(외교 국방 안보)와 내치(교육 보건후생 교통 환경 내무 주택 노동)로 영역을 대별해 클린턴 정부 관계자들과 공동 숙의하는 방식으로 인수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종합적인 정책 검토를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보통 전임 대통령 비서실과 각 부처가 인수팀에 설명할 정책 진행 자료집을 만드는 것으로 정책 인계인수의 1단계가 시작된다. 이 자료집에는 부처가 당면한 문제, 해결해야 할 과제, 전략 정책과제, 부처의 장기 정책과제가 들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인수위는 당선자와 소속 정당의 비전, 정책을 행정부처의 상황에 맞게 접목시켜 정책지침서를 만든다. 지침서에는 해당 부처가 시행 중인 행정명령, 관행, 각종 규정을 심사한 결과까지 들어있으며 부분적으로 시행 중지까지 건의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당선자가 전임 정부 관계자에게서 직접 보고를 받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문제이다. 최근 노 당선자는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고위관계자에게서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전반에 관해 브리핑을 받았다. 시급한 현안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순 있지만 이 경우 전임 정부의 공과를 강조하거나 특정부분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 등으로 당선자가 오도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정책 인계인수는 당선자가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인수위의 종합검토를 거치는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인수위는 정책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데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현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취임 초에는 여야 합의가 쉬운 현안부터 추진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나라당이 국회의 절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출범해야 하는 노 당선자로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취임 초 군내 동성애 허용 등 의회에서 찬반 격론을 불러온 민감한 사안을 추진하다가 정작 의료보험 개혁 등 중요 현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평길 연세대 교수·행정학·대통령 포럼 대표

박석희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박사과정·대통령학

▼美인수위 정책백서는 2종류▼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만들어 당선자 시절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한 정책지침서(Priorities for the President·왼쪽)와 행정부 각료 및 상하원 의원들에게 전한 정책 참고자료(Issues 2002).

정부 인계인수가 체계화된 미국의 경우 대통령당선자의 인수위원회는 대선 공약과 전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검토 및 개별 정책의 의회 통과 가능성, 예산 확보 문제 등을 고려해 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를 최종 결정하고 이를 정책백서로 펴낸다.

인수위의 정책백서는 두 종류다. 하나는 새 행정 부처에 제시하는 정책지침서로 각 부처가 단계별로 추진해야 할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수록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부처별 정책 우선순위를 요약 정리한 것으로 새 대통령과 비서관들의 모니터링 자료로 활용된다.

정책백서는 새 정부의 정책 성패를 좌우할 필수 요소로 간주되기 때문에 인수위는 이를 만드는 작업에 최대의 역량을 투입한다.

정책백서는 미국 정치학회, 헤리티지재단, 브루킹스연구소 등이 공동 참여해 만들기도 하는데 헤리티지재단이 역대 대통령 정권 인수위원 및 정책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작성한 ‘대통령 정책 우선순위’ 와 ‘당선자를 위한 브리핑북’이 그 예다.

정책백서에는 새 정부의 연차별 정책과제가 들어있다. 특히 취임 1년 내에 달성해야 할 정책에 대해서는 월별 추진 과제와 의회와의 협조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수록하고 있어 새 정부의 장관들이 업무 지침서로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수위 정책백서가 처음 공개된 것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당선자 시절이다. 김 당선자의 인수위는 새 정부의 ‘100대 중점 정책과제’를 선정해 이를 책으로 발간했다. 그러나 이 ‘100대 과제’는 각 정책과제의 국회 통과 여부, 예산확보 문제, 연차별 우선 순위 등이 들어있지 않아 미국식 정책지침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책백서를 제대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대통령이 이를 충분히 활용하느냐의 여부도 중요한 문제다. 노무현 당선자는 인수위 정책 전문가들과의 토론 등을 통해 중요한 정책과제를 숙지하고 취임 후 정부 운영에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현성 서울시립대 교수·행정학

▼당선자-현직 대통령 '역할분담' 분명히▼

대통령당선자와 현직 대통령은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야 한다.

헌법에 따른 국정운영의 권한은 대통령 이취임식 때까지는 엄연히 현직 대통령에게 있다. 당선자는 조용히 정권인수작업과 새 정부의 요직 인선 작업을 진행하면 된다. 당선자에게는 국정에 참여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9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김대중(金大中) 당선자가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을 대신해 ‘비상경제대책위원회’ 등을 가동하고 실질적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는 국내외적 특수상황에서 이뤄진,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미국에선 당선자가 국정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게 관례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 기간 중 워싱턴을 딱 세 번 방문했다. 그것도 국정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임 정부와 업무 인계인수 상황을 협의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대신 레이건 당선자는 캘리포니아에 머물며 차기 정부 인선 작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자문역을 지낸 데오도르 소렌슨은 “대통령당선자는 뭔가를 하고 싶어 잔뜩 몸이 달아 있다. 그러나 당선자는 더 이상 후보가 아니다. 이제 훌륭한 연설이나 문제제기만 하면 되는 시절은 끝났다. 당선자는 스스로가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선자가 선거 승리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또 국정 현안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거나 어떤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언급하는 것은 나중에 자신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충고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최근 중대선거구제 도입, 2004년 총선 이후 다수당에 국무총리 지명권 이양 등을 언급했다. 당선자 참모진에서는 ‘상장사 임원 연봉공개 추진’ 등의 정책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 정책들을 국회 통과 여부, 경제전반에 미칠 영향 등을 검토한 뒤에 내놓았는지도 의문이지만, 검토를 거쳤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그런 안을 내놓는 것이 적절한지는 재론이 필요할 듯하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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