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당선자 집권구상 윤곽]‘메스’ 든 대통령… 살림꾼 내각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8시 26분


제주에서 1박2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23일 집권 구상의 일단을 밝혔다. 노 당선자는 이날 선대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새 정부의 첫 내각 인선 구상과 집권 1년 만에 치러지는 2004년 17대 총선 이후의 당정 및 대야(對野)관계에 관한 대강의 방향을 제시했다.

▽새 정부 첫 내각은 ‘안정팀’〓노 당선자는 첫 내각 구성 방향을 ‘개혁과 안정의 역할분담론’으로 설명했다. 또 새 내각에 당 인사의 기용을 가급적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자신이 강한 개혁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 국민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만큼 새 정부의 집행자 역할을 할 내각은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을 대거 등용하겠다는 얘기였다.

이는 비록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자신이 표방한 개혁노선의 실행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만한 지지기반이 아직은 두껍지 않다는 냉엄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 인사의 내각배제 방침에는 아직 정치권 내에서 대세를 장악하지 못한 개혁그룹의 힘이 민주당과 정부로 분산될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듯하다.

이는 자신을 지지하는 개혁성향 의원들은 일단 민주당의 개혁에 주력하고 내각은 전문가그룹과 테크노크라트 중에서 충원하겠다는 계산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는 또 일단 임명한 장관은 2, 3년 정도는 임기를 보장해 정책의 일관성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노 당선자측의 한 관계자는 “98년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당시 당 소속 의원을 정부로 대거 빼 가는 바람에 당이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며 “그 같은 과오를 피하겠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2004년 총선 결과가 고비〓노 당선자는 집권 1년 후에 치러지는 2004년 4월의 17대 총선이 자신의 앞으로 국정운영에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선대위 회의에서 “총선 결과에 따라 민주당이 명실상부한 집권당이 될 수도 있고 프랑스식 동거정부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언급은 이런 인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노 당선자가 대통령 취임 이전까지 민주당의 개혁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겠다며 당 개혁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것도 17대 총선을 의식한 포석이다. 당 개혁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결국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기 어려우며 남은 임기 동안 안정감있는 국정운영이 사실상 어렵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노 당선자는 또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정치권과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현재의 지역대결 구도를 극복함으로써 소수당이자 지역정당의 모습을 띠고 있는 민주당의 위상을 바꿔놓겠다는 얘기다. 다만 이 문제는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열쇠를 쥐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17대 총선에서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계속될 때에는 다수 야당에 총리지명권을 줌으로써 남은 임기를 초당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대통령비서실과 인수위는 실무중심〓노 당선자는 대통령비서실 역시 철저하게 업무능력을 중심으로 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자신을 보좌해온 측근인사의 기용도 최소화해 비서실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일부 측근인사에게 이미 그 같은 방침을 통보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비서실의 핵심 요직에도 현역 의원은 최대한 배제될 것으로 보여 정치권에서는 상당수 원외 인사의 기용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비서실의 실무진 역시 현재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사 중 상당 인원을 계속 잔류시켜 업무의 연속성을 기할 것이란 소문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한편 노 당선자는 다음달 초 발족할 인수위는 정책 중심의 실무형으로 짜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정부를 접수하는 식의 권력 인수가 아니라 정책을 분석, 판단하고 인수하는 기능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수위에 참여할 25명 이내의 인수위원은 철저히 정책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사들로 구성하고 당 소속의 현역 의원이나 당료는 최소 인원에 그칠 전망이다. 노 당선자는 또 인수위에 외부전문가 중심으로 짜여진 정책자문그룹을 두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계속 이 자문그룹을 활용하겠다고 밝혀 이들 자문그룹의 역할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안정-균형의 총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23일 ‘개혁의 대통령, 안정과 균형의 총리’라는 새 정부 구성 방향을 밝힌 것과 관련해 특정인을 이미 ‘총리감’으로 심중에 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노 당선자는 “그런 분(총리감)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으나 선대위의 한 핵심관계자는 “‘50대의 젊은 대통령과 60대의 경륜 있는 총리’ 구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노 당선자가 어떤 문제에 대해 ‘안정과 균형’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총리감이 달라질 수 있다”며 벌써부터 일부 인사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노 당선자가 자신을 ‘절반의 대통령’이라고 말한 만큼 ‘지역적 균형’을 고려한다면 전 총리인 L씨 등 영남출신의 경륜 있는 인사가 유력할 것이라고 한 관계자가 말했다.

당내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고건(高建) 전 서울시장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고 전 시장의 ‘클린 이미지’가 노 당선자의 ‘안정 속 개혁’과 맞아떨어진다는 것.

심각한 북한핵 위기에 대처할 국제감각을 지닌 ‘통일외교 전문가’를 총리에 기용하고 싶다면 외무부장관을 지낸 H씨 등 친한나라당 성향의 인사도 발탁될 가능성이 있다.

당내에서는 노 당선자가 당내 인사 배제 방침을 밝혔지만 그의 정치후견인 격인 김원기(金元基) 고문도 총리 후보군 내에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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