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석학자가 본 대통령후보]<1>이회창

  • 입력 2002년 12월 4일 19시 11분


《인물에 대한 평가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회창, 노무현 두 대통령후보의 정신 심리구조는 어떨까. 동아일보는 언론사상 처음으로 두 후보를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보는 기획을 마련해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분석을 맡은 정신과 전문의 신용구 박사는 한달 반 동안 자서전과 각종 언론매체 등을 통해 소개된 두 후보의 성장 환경과 언행, 행동 유형 등을 분석의 틀로 삼았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안정적이란 평과 함께 지나치게 원칙적이란 말도 듣는다. 또 날밤을 지새우며 재판 서류를 정리하고 보좌진이 써온 원고의 자구 하나까지 살피고 수정하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란 평가도 있다.

동시에 97년 대선 때 지방 유세를 하다가도 잠만은 꼭 서울 집으로 돌아가 잘 정도로 청결에도 몹시 신경을 쓰는, 강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같은 평가들은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사였던 부친의 전근이 빈번해 이사가 잦았고 그 때문에 낯선 곳에 가면 새 친구들이 혹시 텃세를 부리거나 놀리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감을 잃지 않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루 종일 영어 교과서를 들고 다니며 문장을 외우거나 텃세 부리는 친구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몹시 경쟁적이고 승부근성이 강한 아이가 된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수학 시험성적이 나쁘게 나오자 이 후보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가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는 절망의 저변에 깔린 그의 불안 심리를 말해준다.

부모가 나들이할 때는 대개 한살이라도 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상례인데 그의 모친은 네 살배기인 그에게 혼자 집을 보게 하고 그보다 공부를 잘하는 형과 손위 누이를 데리고 친정에 다녀오곤 했다고 한다. 자신에 비해 형을 편애하는 듯한 어머니의 태도에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일곱 살 적에 군말 없이 어머니의 쌀 심부름을 하는 의젓한 행동은 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한 형제간 경쟁심의 발로로 이해된다.

부친은 훨씬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이 후보의 부친은 엄했을 뿐 아니라 공직자의 청빈을 무섭게 강조한 사람이었다. 이 후보를 둘러싼 남자들은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강한 남자들로 그가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 후보가 받았을 정신적 중압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부담스러운 경쟁적 관계가 빚는 갈등과 자신의 무력감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 후보는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하게 된 것 같다.

이 후보는 가장 좋아하는 애독서로 로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을 꼽는다. 이 책에서 황제는 “최고 인격의 인간은 티끌 같은 욕심도 버리고 소박순일(素朴純一)한 성정으로 열과 성을 다해 치열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굴곡 많은 공직생활은 무욕의 아우렐리우스를 연상시킨다.

원칙 앞에서는 핵심 권력층과의 충돌도 피하지 않은 도전적 자세는 어떤 경우에도 법질서는 존중돼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그의 원칙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행동을 보면 ‘두려운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이라는 아우렐리우스적인 사고에 기초한, 순수에 대한 집착과 도덕적 완고함까지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이 후보는 아버지보다 훨씬 순수하고 완전한 인격을 갖춘 초월적 존재에 자신의 욕구를 투사하고 자아 이상(ego ideal)을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자아 이상을 보통의 인격을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로 삼는 것은 현실적 경쟁관계에서 갈등을 겪어온 이 후보에게는 편리한 점이 아주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괴롭힘을 당해 온 일상적 경쟁과 대결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경쟁이 빚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모의 변함없는 사랑과 인정을 얻고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순수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그가 집권을 하게 된다면 법치에 따른 공정한 규칙이 실현되는 정치를 구현하려 할 것이다. 또 순수에 대비되는 부정과 부패를 일소하고 이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조선 중종 때 하늘을 찌르는 기상과 기개에다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조광조가 정작 자신의 도덕적 완고함 때문에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개혁에 실패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강박적인 성격에서 기인할 수 있는 편식(偏食) 현상의 가능성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강박적인 사람은 마음을 정하는 것은 더디지만 일단 결심을 하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일도 마찬가지이고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사람도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 버릇이 있어 통치자가 되었을 경우 인의 장막에 갇힐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은 없는지 스스로 경계하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

빌라사건을 통해 보여준 국민과의 괴리감도 문제다. 수십년간 판사 생활을 했고 변호사 생활까지 한 사람으로서 축재의 과정이 깨끗하다면 그 정도 규모의 집에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자 ‘청부(淸富)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로서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동기와 목표의 순수성이 결과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있어도 일반 국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자신의 소신과 여론 사이에 생길 수도 있는 사고의 괴리와 정서적 거리감을 어떻게 좁혀나갈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글쓴이 신용구박사 ▼

신용구(愼鏞9·40) 박사는 경남 거창군에서 태어나 진주고, 인제대 의대를 졸업했다. 국립 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고 정신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경기 안양메트로병원 정신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 ‘콤플렉스로 역사 읽기’ 등의 저서를 펴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동아일보에 ‘김정일의 태도로 본 정신분석’을 게재하기도 했다. 한국인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병리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심리구조를 분석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 분야의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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