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남북관계 속도조절 필요”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8시 31분


“북한을 치약 짜듯이 다루면 안 된다.”

최성홍(崔成泓) 외교통상부 장관은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주주의공동체(CD) 회의 개막식 직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만이 잔뜩 묻어있는 어조였고, 북한 핵문제를 놓고 미국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정부 당국자들의 요즘 정서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실제 북한의 ‘선(先) 핵포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미국의 대북(對北) 압박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암암리에 우리 정부를 향해 남북관계의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를 통한 외교적 압박 노력이 1단계 조치라면 2단계 조치인 대북 경제제재가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동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의 도쿄(東京)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마치자마자 서울을 찾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이날 이태식(李泰植)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도 대북 중유 제공 지속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부정적 태도를 전달했다.

켈리 차관보는 북한이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내년도 중유 지원이 어렵다는 점과 북한 원산항을 향하고 있는 11월분 중유 수송선을 회항시킬 수도 있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켈리 차관보는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을 만나 남북대화 채널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정 장관은 우리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켈리 차관보도 ‘미국은 남북간 대화와 협력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문제는 11월분 중유가 지원된 이후에도 북한이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북제재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자는 “11월분 대북 지원 중유가 우여곡절을 거쳐 북한측으로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앞으로가 첩첩산중”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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