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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7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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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국제적 명성을 바탕으로 정상외교에 관한 한 역대 어느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족적을 남겨왔다고 믿는 김 대통령 특유의 자신감도 배어 있는 전언(傳言)이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 핵문제라는 ‘높은 벽’을 만났기 때문이다.
27일 새벽(한국시간)에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의 공동 발표문은 17일 발표된 미 국무부 대변인 성명서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김 대통령의 목소리는 상당부분 묻혀버렸다. 한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동남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정상회의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왔던 김 대통령에게는 ‘수모’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김 대통령은 99년 9월 뉴질랜드 APEC 정상회의에서 ‘동티모르 사태’를 국제적 이슈로 점화시킨 주인공이었다. 그는 당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이를 적극 제기해 공동발표문의 3분의 1 정도가 이 사태에 대한 우려와 해결 방안으로 채워졌다.
그는 또 2000년 11월 싱가포르 ASEAN+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지역협력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구인 ‘동아시아 스터디그룹(EASG)’ 창설을 주도했다. 지난달 덴마크 ASEM 회의에서는 북-미 대화의 재개를 권유하는 내용의 ‘한반도 평화 선언’을 채택하도록 이끌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를 은근히 압박하기도 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