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정상회담 이모저모]金 "가깝고도 먼나라는 20세기 유물"

  • 입력 2002년 9월 17일 18시 59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오른쪽)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 평양(아사히신문제공)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오른쪽)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 평양(아사히신문제공)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17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두 차례 회담을 가졌다. 회담의 역사적 의미와 그 결과가 동북아와 아태지역 정세에 미칠 영향 탓인지 회담장 분위기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회담▼

○…고이즈미 총리는 백화원 영빈관에 오전 11시 직전에 도착,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김 국방위원장을 기다렸다. 11시 정각, 평소의 카키색 잠바 차림으로 모습을 나타낸 김 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다가가 악수하면서 “반갑습니다”라고 말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엷은 미소를 띠며 “초대해줘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

고이즈미 총리는 이어 아베 신조(安倍晉三) 관방 부장관 등 수행원들을 소개했고 김 위원장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 분위기는 다소 딱딱했고 양측 모두 긴장된 표정.

이어 김 위원장은 “들어갑시다”라며 고이즈미 총리를 회담장소로 안내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가는 도중 복도의 꽃을 보면서 “꽃이 아름답습니다”라고 한마디 건넸을 뿐 두 사람 다 별말이 없었다.

○…회담장에서 김 위원장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대신께서 먼저 스스로 평양을 찾아주신 데 대해 열렬히 환영한다”고 인사.

그는 이어 “조일(朝日)관계의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평양에 오시게 됐는데 기쁘다기보다도 주최측에서는 대단히 미안한 감도 든다”고 말했다. 또 “‘가깝고도 먼 나라’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평양을 방문해 준 것에 대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먼 나라’라는 말은 20세기 낡은 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

고이즈미 총리는 김 위원장이 말하는 것을 듣기만 했으며 다소 경직된 표정이었다.

○…회담에는 북한측에서 3명, 일본측에서 6명이 참석. 김 위원장의 오른쪽에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오른쪽에는 통역이 앉았으며 김 위원장은 작은 메모지와 검은색 펜을 손에 들고 모두(冒頭) 발언을 했다.

일본측에서는 고이즈미 총리 외에 아베 관방 부장관과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등이 배석. 오전 회담이 끝난 뒤 양측은 공식 오찬행사 없이 각자 식사 및 휴식시간을 가진 뒤 곧바로 오후 회담을 시작했다.

▼언론보도 반응▼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오전 6시 정시뉴스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과 관련해 ‘일본국 고이즈미 총리대신의 약력’을 9번째로 보도. 노동신문은 17일자 1면 오른쪽 하단 구석에 3단 크기로 고이즈미 총리의 약력을 사진과 함께 소개.

일부 일본 기자들은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에 왔을 때는 1면 톱이었다”며 “아프리카 국가의 정상이 방문해도 이 정도는 보도할 것”이라고 섭섭함을 표시하기도.

○…각국 언론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하루 전인 16일 오후 평양에 도착해 고려호텔 1층 프레스센터에 짐을 푼 일본 기자단과 외신기자 120여명은 공항에서 회담장까지 두 정상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특히 일본 NHK는 고이즈미 총리의 순안공항 도착을 현장에서 위성 중계했다.

북한측도 기사 전송 편의를 위해 사상 최대규모인 100회선의 통신회선을 프레스센터에 설치하고 기자들의 위성 휴대전화 지참을 처음으로 허용하는 등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평양도착▼

○…고이즈미 총리 일행을 태운 일본정부 전용기는 도쿄 하네다공항을 출발한지 2시간30분만인 오전 9시6분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고이즈미 총리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트랩을 내려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동안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거나 허리를 가볍게 숙여 인사하는 특유의 ‘예의’를 갖췄지만 이날은 시종 굳은 표정.

일본 언론은 “일본인 납치문제에 결실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데다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북한에 왔다는 결연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표정이 굳어졌을 것”이라고 분석.

○…공항영접 행사에 북한측에서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익철(金益喆)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일 외무성 부상 등이 나와 고이즈미 총리와 간단한 인사말과 악수를 교환.

김 상임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먼길 잘 오셨습니다”라고 인사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좋은 날씨입니다”라고 화답. 고이즈미 총리는 검은색 링컨 컨티넨탈 승용차에 타고 곧바로 회담 장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내외신 보도진만 분주하게 오갔을 뿐 환영을 위해 동원된 군중이나 군악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양 시내도 환영 인파나 플래카드는 물론 통상 외국정상이 방문할 때 내걸리는 국기도 보이지 않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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