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 “이번엔 본때 보여주자”

  • 입력 2002년 6월 9일 22시 44분


광주 민심이 심상치 않다. 현지에선 “이번에는 정말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거나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4년 반 동안 자기들 잇속만 챙겼지 광주 시민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느냐”는 험악한 얘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런 이상기류는 민주당의 시장후보 경선이 발단이 됐다. 지난달 초 경선에서 이정일(李廷一) 전 서구청장이 76표 차로 승리했지만 곧바로 금품 살포 문제가 불거지면서 반(反) 민주당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게다가 김태홍(金泰弘) 의원이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이정일 후보로부터 50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이 지역의 민주당 의원들이 밀실 논의 끝에 동교동계인 박광태(朴光泰) 전 의원으로 후보를 전격 교체하면서 광주의 반(反) 민주당 기류는 눈에 띄게 드세졌다.

경선 후유증으로 민주당의 시의원, 구의원, 당원들이 잇따라 탈당해 무소속 후보 진영으로 옮겨갔지만 현지에서는 ‘배신행위’라기보다는 ‘이유 있는 항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다른 지역과 달리 광주에서는 투표율이 낮아야 민주당이 유리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9일 광주 지원 유세계획이 전해지자 광주지역의 시민단체는 물론 광주지역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까지 노 후보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고 나서는 상황이 벌어졌고 노 후보는 유세계획을 취소했다.

노 후보는 대신 홈페이지에 띄운 영상메시지를 통해 “부패스캔들로 호남 유권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점은 정말 죄송하다. 겸허한 자세로 당을 개혁하겠다. 많은 허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나라당이 대안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지지를 호소했다.

사실 노 후보의 주장처럼 광주 현지에서는 ‘그래도 민주당뿐’이라는 저류가 아직 만만치 않다. 50대의 한 유권자는 “이 지역 정치인들을 모두 바꿔야 하지만 대안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선거와 대선, 즉 지역 정치인과 노 후보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노 후보가 광주유세를 취소한 데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30대 회사원인 강모씨는 “노 후보가 오든, 누가 오든 지금의 광주 민심은 수습하기 힘든 상황이다. 노 후보는 정권 재창출의 대안인데, 안 좋은 분위기에 휩쓸리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는 무소속 후보들의 약진이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싫은 광주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광주〓김 권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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