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따내기 요지경]의원1명이 15건 1800억 요구도

  • 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31분



내년 예산안 처리를 앞둔 여야 간 막판 계수조정작업이 의원들 지역구의 민원성 사업 예산을 둘러싼 쟁탈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가 막판에 증액을 요구하고 나선 예산 항목은 대부분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사업. 겉으로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확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잇속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구 챙기기 봇물〓한나라당은 계수조정 협상 과정에서 1조2000억원의 순삭감을 요구했으면서도, 당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예산은 대폭 증액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보가 입수한 한나라당의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소속 의원들이 증액을 요구한 액수는 총 9000억원. 그리고 이 중 대부분인 7683억원이 철도 도로 항만 건설, 복지시설 건립 등 지역구사업이었다. 총 64건의 지역구 사업 중 경남이 21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 11건, 대구 9건, 경북 7건으로 영남지역의 민원사업이 75%나 됐다.

이 중 부산 출신의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부산 신항 배후도로(280억원) △부산 남항대교 건설(300억원) 등 15건에 1800억원을 요구했다. 이들 사업 예산 중 대부분은 정의화(鄭義和) 의원도 공동으로 요구했다.

또 경남 산청-합천이 지역구인 김용균(金容鈞) 의원은 합천군 3개면 지역의 배수개선과 지방도로건설 등 11건에 857억원을 예산에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만제(金滿堤) 김일윤(金一潤) 정형근 도종이(都鍾伊) 의원 등은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2단계 구간의 내년 착공(700억원)을 공동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대형 사회간접자본 투자 외에도 △대구 수성문예회관(10억원, 박세환 의원) △강원영월 추천도서관 건립(10억원, 김용학 의원) 등 소규모의 지역민원사업도 적지 않다.

▽‘예산 지키기’ 방어전도 뜨겁다〓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예산안을 짜는 과정에서 당정협의 등을 통해 지역구 민원사업 예산을 상당 부분 반영했기 때문에 국회 심사 과정에서 삭감되지 않도록 방어전에 더 치중하고 있다.

정부 예산안 중 외국인 투자유치 지원 사업, 광주 김치종합센터 건립, 지하철 7호선 연장사업,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건립, 장보고대사 조명사업, 전남 무안 화훼수출단지 조성 사업 등은 민주당 의원들의 대표적인 지역구 민원사업들.

지하철 7호선 연장사업(온수∼부천 상동∼인천 부평구청역 구간)은 안동선(安東善) 의원 등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합세해 예산안에 반영한 사례. 또 예결위원인 이희규(李熙圭) 의원은 경기 이천∼내사 구간 국도 42호선 공사비 177억원과 경기 성남∼이천 복선전철 기본계획수립 예산 13억원을 따냈다.

행자부 소관의 15개 공공도서관 건립 사업도 9개가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였다.

광주 김치종합센터의 경우 예결위 간사인 강운태(姜雲太) 의원의 지역구 역점 사업. 농림해양수산위의 예비심사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김치를 홍보하려면 서울에 두는 게 타당하다”며 예산을 전액 삭감하려 하자 강 의원이 강력하게 항의, 12억7600만원을 깎는 데 그쳤다는 후문이다. 강 의원은 막판 계수조정과정에서 광주 순환도로 사업(300억원)도 요구해 놓은 상태다.

또 전용학(田溶鶴) 의원은 충남 천안공대 토지매입비 7억원을 교육위 예비심사과정에서 반영시켰고, 원유철(元裕哲) 의원은 경기 송탄공단∼평택공단 간 국도 1호선 확장공사비로 80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네 것은 깎고, 내 것은 올리자〓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가 치열해지면서 상대당의 지역구 사업 예산은 깎고 자기 당 지역구 사업은 올리려는 싸움도 뜨겁다.

한나라당은 광양항 군산항 목포항 등 호남지역 항만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부산신항 예산은 증액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또 호남선 전철화사업은 250억원, 장항선 개량사업은 200억원을 삭감할 것을 주장한 반면 대구선 이설사업 92억원, 경남 삼랑진∼진주 전철화사업 70억원, 동해중부선 철도 건설사업 110억원, 동해남부선(울산∼경주∼포항 구간) 복선전철화사업 50억원 등은 증액 또는 신규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밖에 대형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은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중앙당 차원에서 예산 따내기를 추진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은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2단계 구간 중 당장 착공이 가능한 곳은 내년에 착공에 들어갈 것을 요구하면서 700억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호남선 전철화사업 예산(1750억원) 삭감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정훈·윤종구기자>jng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