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행정부처 표정]"관료들 대권주자 줄대기 심해질 것"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56분


대통령이 임기 1년3개월을 남기고 여당 총재직을 사퇴하는 이례적 사태가 발생하자 청와대와 행정부처 관계자들은 걱정이 앞서는 듯한 표정이었다.

○…각 부처는 우선 대(對) 국회 관계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기국회가 열려 있는 상황에서 당장 내년 예산안과 각종 법안 처리 과정에 여당의 지원이 소홀해질 염려가 있기 때문. 총리실의 한 간부는 “이제 당내 문제로 민주당은 정신이 없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야당의 태도가 예전보다 부드러워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10·25 재·보선 승리 이후 야당에서 정치와 행정을 따로 보는 합리적인 시각이 생겨난 점에 비추어 이런 경향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료들의 공직기강 이완과 대권주자를 향한 줄대기 풍토가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시각도 많다.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직을 사퇴함으로써 조만간 레임덕 현상이 표면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고위공직자는 “누구보다 권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관료들이 차기 정권의 향배를 의식해 아무 일도 안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도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우려해 8일 유엔총회 참석차 출국하기에 앞서 “그동안 해왔던 대로 흔들림 없이 잘 해달라”며 공무원들에게 국정에 전념할 것을 당부했다.

정부 내에서는 향후 대북정책 추진에도 장애가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도 장악력이 떨어져 가는 정부와 협상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특히 대통령의 집권당 총재직 사퇴가 청와대의 위상 축소를 불러와 행정부에 대한 장악력이 약화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총재직 사퇴라는 단안을 내린 데에는 대선후보 경선을 의식해 무분별하게 처신해 온 일부 대선 예비주자들의 책임도 크다”고 비난했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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