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의미]대화복원 일단 물꼬

  • 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32분


99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회담 직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 테러 전쟁문제와 그에 따른 경제문제에 관한 것 외에 다른 대화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날 총재단 오찬에서도 이 총재는 “다른 현안을 논의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김 대통령이 먼저 어떠한 언급을 하면 내 견해를 밝히려 했으나 아무 언급도 않더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회담에서 북한의 테러 문제에 대해 완곡하게 거론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후문. 또 전날 실무협의 과정에서 청와대측이 남북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으나 한나라당측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회담 의제를 제한한 것은 두 사람 다 9개월여 만의 회담임을 의식하고, 부담스러운 논의를 피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대 테러 전쟁과 경제 문제에 관한 초당적 협력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마당에 굳이 껄끄러운 얘기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두 사람은 생각했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또한 ‘이용호 게이트’나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 등 주요 정치쟁점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워낙 달라 논의해봤자 합의할 게 별로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김 대통령이 제의하고 이 총재가 수용하는 형식이긴 하지만 회담이 하루만에 전격 성사된 것부터가 두 사람 모두 회담 내용보다는 만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김 대통령은 각종 의혹사건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개시로 동요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이 총재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간의 연대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서로 만날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 이날 회담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았음을 한나라당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민생과 경제를 앞세운 여야간의 대화분위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향후 정국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여야간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용학(田溶鶴) 대변인은 “이번 회담이 주로 미국의 대 테러 전쟁에 대한 대처방안에 국한한 것이지만, 다른 분야로 확대해 여야간에 ‘상생의 정치’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기배(金杞培) 사무총장은 “미국의 대 테러 전쟁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다짐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를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토를 달았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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