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축전 파행 이모저모]남쪽 대표단 내부 분열

  • 입력 2001년 8월 15일 23시 38분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 중인 남측 대표단 일부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개막식 참석 파문은 남측 추진본부 지도부와 북측 준비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남북 양측은 15일 오후 3시부터 남측 대표단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실무협의를 가졌으나 북측이 당초 남북간 미합의 부분이었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서의 개막식 참관을 요구해 문제가 생겼다. 남측 추진본부측은 즉각 “기념탑에서의 행사엔 참석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방북한 만큼 북측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남측 대표단 중 통일연대 소속 인사들이 “북녘 동포들이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기념탑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다는데 우리가 안가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해 동요가 일었다.

이 단체 소속인 민주노동당 자주통일위원장 최규엽씨 등이 계속 “행사에 참여하자”고 주장하자 수십명의 통일연대 소속 인사들이 대기 중인 버스에 탑승했고 이어 민주노총측 인사들도 ‘조직의 결정’이라며 탑승했다.

반면 참가 단체 중 민화협과 7개 종단 회원들은 “안 가기로 각서까지 써놓고 지금 와서 무슨 소동이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종단측 김종수(金宗秀) 신부와 통일연대 한충목 집행위원장, 민화협 조성우 집행위원장 등은 오후 5시반부터 입장 조율을 시도했다.

그 사이 고려호텔 로비에서는 대표단에 참가한 단체의 소속 인사들이 개막식 참여파와 비참여파로 갈린 채 설전을 벌여 간간이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통일연대 소속 인사들은 “다 같이 가서 참관만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오후 6시20분경 이미 5대의 버스에 탑승했던 참여파 인사 150여명은 “더 이상 지도부의 결정을 기다릴 수 없다”며 기념탑을 향해 출발했다.

○…기념탑 행사에 참석한 일부 남측 참가자들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깃발과 ‘남북 노동자 앞장서서 조국통일 앞당기자’라는 내용이 새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남측 참가자들 중 앞줄에서 행진하던 통일연대 소속의 양심수후원회장 권오헌씨는 기념탑 앞에 이르자 “기쁘고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영문도 모른 채 기념탑 행사에 따라 나섰던 종단과 민화협의 일부 참가자들은 남쪽 공동취재단 기자들에게 “세 조직(7대 종단, 민화협, 통일연대)이 모두 참가하기로 한 것 아니냐. 지금이라도 고려호텔로 돌아갈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는 등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남측 대표단은 15일 아시아나항공 전세기 2대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남북 직항로를 따라 오후 1시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북측 행사 관계자들과 평양시민 2300명이 나와 남측 대표단을 열렬히 환영했다.

남북 직항로를 이용한 대규모 방북은 2월 제3차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이후 6개월 만이며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것은 처음이다. 대표단 중에는 89년 밀입북했던 황석영(黃晳暎·본명 황수영)씨와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林秀卿)씨 외에 김숙희(金淑喜)전 교육부장관, 시인 도종환씨 등이 포함됐다.

12년 만에 북한 땅을 합법적으로 밟게 된 황씨와 임씨는 감회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민족예술인총연합회 부회장 자격인 황씨는 “감개무량하다. 89년 밀입북한 뒤 개인적으로 우여곡절을 거쳤는데 그 짐을 털어 버리는 마무리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 ‘장길산’의 작가인 황씨는 89년 밀입북한 후 93년까지 해외에 거주하면서 5차례나 북한을 다녀왔고 귀국해서는 5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황씨는 방북 기간에 고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10여차례나 만나기도 했다.

임씨는 전대협 동우회의 요청에 따라 방북길에 올랐다. 호주에 머물고 있던 그는 방북을 위해 14일 급히 귀국했다. 임씨는 “다시 가는 데 꼭 12년 걸렸어요. 이제는 자꾸 만나야죠. 이젠 남북 청년학생 교류를 중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임씨는 99년2월 사면 복권됐다.

<김영식기자·평양〓공동취재단>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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