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수사 선긋는 검찰]"초점은 예산훔친 도둑"

  • 입력 2001년 1월 16일 19시 05분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 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지자 검찰이 긴급 ‘가지치기’에 나섰다.

16일 발표된 검찰의 차후 수사 방침은 한마디로 국가 예산을 훔친 몇몇 ‘도둑’은 잡되 이 돈을 훔친 것인 줄 모르고 받은 수백명의 ‘장물 수수자’에게는 면죄부를 준다는 내용.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의원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온 이같은 방침은 사실상 ‘수사 중단’이나 ‘수사 장기화’의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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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받은 사실만 확인"▼

▽‘가지치기 수사’ 배경〓검찰은 15일까지도 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해 ‘장물취득’ 등의 형사 처벌과 함께 소환 조사 대상과 시기를 검토중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신승남(愼承男)대검 차장은 16일 “여러 방법을 통해 누가 얼마를 받았는지만을 확인하지 더 이상의 수사나 사법 처리는 없다”고 명백히 선을 그었다. 신차장은 ‘상식적인 판단’임을 강조했다. 한푼이 급한 선거판에 당에서 돈을 주는데 “이게 어디서 나온 돈이냐”고 물을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방침 선회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더 이상의 확전이 정권이나 검찰, 나아가 국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비자금 수수설과 특검제를 내세워 격렬하게 저항하는 상황에서 야당 정치인들을 대거 소환할 경우 검찰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검찰로서는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만으로도 과거 국고 유용의 관행을 드러내고 야당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 만큼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자민련 김종호(金宗鎬)총재권한대행 등 여권 인사들의 자금수수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 제기에 신차장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액받은 정치인' 수사 관심▼

▽수사 전망〓검찰이 가지치기를 하고 남은 수사 대상은 강의원 등 국고 횡령 행위의 ‘라인’에 선 사람들. 이들은 구속된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과 강의원이 안기부 돈을 횡령하는 과정에 개입했거나 안기부 돈인 줄 알고 거액을 받은 정치인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수사중”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다만 수사 대상은 극히 소수가 될 전망.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상은 당시 신한국당 지도부와 청와대 관계자, 안기부 고위층 등이지만 검찰은 아직 실명을 거론할 만큼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강의원과 김전차장의 ‘입’에 달려 있는 셈. 그러나 김전차장은 입을 다물고 있고 강의원은 검찰 소환에 절대 불응할 태세여서 수사가 더 이상 진전될지는 미지수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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