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장관 전격사퇴 배경]19일밤 최고위원 모임서 가닥

  • 입력 2000년 9월 20일 19시 08분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장관은 20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오늘 아침 대통령께 전화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장관이 전격사퇴를 결심한 것은 19일 밤이라는 것이 여권 주변의 정설이다.

19일 낮까지만 해도 여권 내에서 박장관의 자진사퇴를 점칠 수 있는 별다른 기류가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은 이날 기자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박장관에 대한 혐의가 나오면 내가 제일 먼저 물러나라고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내가 끝까지 보호한다”고 공언했던 상태였다. 청와대의 기류도 비슷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현 시점에서 박장관의 사퇴는 고려한 적도 없고, 거론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장관의 자진사퇴에 상당수 의원들이 동조했고, 이날 밤 최고위원 간담회에서도 “박장관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정리가 되면서 박장관의 사퇴가 기정사실화됐다는 후문이다. 한 최고위원은 간담회가 끝난 뒤 “박장관을 두둔해온 권최고위원조차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권최고위원은 상기된 표정으로 “누구를 좀 만나야겠다”며 어디론가 떠났는데 그 후 박장관과 만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위원 간담회 이후 박장관의 퇴진 결정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0일 “어제 저녁 박장관이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가 집에 돌아가 홀로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19일 밤 이미 박장관의 사퇴결심을 전해들었다”고 상반된 진술을 했다.

사퇴 결심을 굳힌 박장관은 20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 권최고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박장관은 왜 이 시점에 사퇴를 결심했을까.

박장관은 그동안 주위사람들에게 “만일 한빛은행사건에서 내 혐의가 드러나면 청와대 앞에서 할복하겠다”고까지 자신의 결백을 자신했었다. 그런 그가 20일 전격 사퇴한 것은 21일로 예정된 이운영(李運永)전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의 검찰출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관 신분으로 검찰수사를 받을 경우 ‘뒷말’도 많고, 김대통령과 정부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나라당이 요구하고 있는 특별검사제 도입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작용한 것 같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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