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두가족 희비]기어이 못만난 어머니

  • 입력 2000년 8월 17일 23시 36분


희비가 엇갈린 이산가족 상봉의 마지막 날. 한 가족은 마침내 다시 만났고 또 한 가족은 50년간 기다린 만남을 결국 포기해야 했다.

북한 촬영감독 하경씨(74)는 17일 오후 개별상봉이 이뤄진 워커힐호텔에서 전 부인 김옥진씨(77)와 마침내 재회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기만 하던 두 사람은 곧 오랜 옛사랑을 만난 감격에 서로를 껴안았다. 하씨는 김씨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사랑한다”는 말을 연발했고 김씨도 과거의 뜨거웠던 연애시절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온 가족의 웃음 속에 긴장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바뀌자 김씨는 큰맘 먹고 준비한 ‘구치’ 선글라스를 선물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며 난감해하던 하씨는 자녀들이 “더 큰 선물이 있지 않느냐”며 키스를 권하자 곧 김씨에게 ‘진한’ 키스를 몇 번이나 퍼부었다.

하씨의 자녀들은 “모두가 울고불고 통곡하기 마련인 첫 만남의 자리에서 부모님이 너무나 행복하고 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연출해 놀랐다”며 기뻐했다.

한편 기동이 불편해 이틀 동안 상봉장에 나가지 못한 김애순씨(88)는 “상봉원칙을 깰 수 없다”며 북측이 가정방문을 허용하지 않아 50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아들 양한상씨(69)를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는 만날 거라 믿었는데 오래 살면 뭐해…”라며 주름진 손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던 김씨는 “어미 걱정 말고 북한에서 잘 살라”는 말과 함께 이름도 모르는 며느리에게 주려고 준비한 한복과 패물 등을 전달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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