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85년 상봉 이재운씨 "1세대는 모두 만나야"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12분


“이산가족 1세대는 살아 있다면 모두 만나게 하고 상봉은 면회소 설치 등으로 지속돼야 합니다.”

85년 9월20일 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15세 때 헤어진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리는 모습이 세계로 타전돼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재운(李在運·65)변호사.

그 뒤 이산가족문제 전문가가 된 그에게서 1차 상봉 때의 감회와 앞으로의 과제를 들었다. 그는 85년 평양을 방문했던 방문단원들의 모임인 ‘일평회’ 회장이다.

―85년 방북 때의 상황은….

“처음이니만큼 ‘믿을만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지도급 인사들이 많았다. ‘큰 기대 하지 말라’는 정부의 당부도 있어서 그저 35년만에 고향땅을 밟는다는 생각으로 갔다.”

―실제 상봉은 얼마나 이뤄졌나.

“공식석상 10분, 개인상봉 15분에 저녁식사 한번, 헤어질 때 호텔로비에서 10분이 전부였다. 어머니를 만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돌아가신 줄 알고 있던 아버지가 나와 놀랍고 반가워 통곡했었다.”

―짧은 만남이어서 아쉬움도 컸을텐데….

“아버지를 만난 뒤 솔직히 사는 게 아니었다. 당시 식사로 불고기가 나왔는데 아버지는 몇번 씹더니 뱉어버리셨다. 평생 고기 한번 제대로 못 드신 것 같았다. 썩은 손가락에 야윌 대로 야윈 아버지 생각에 돌아와서도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2년 전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맘이 놓였겠느냐.”

―이산가족 상봉은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겠나.

“한번 만나고 끝날 거라면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맘 편하다. 길어야 7, 8년 후면 이산 1세대는 모두 죽는다. 그 전에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만나야 한다. 면회소를 설치하고 통행 및 우편협정을 맺어 서로 왕래하고 편지교환도 하도록 해야 한다.”1남6녀의 외아들로 3대 독자인 이씨는 50년12월 아버지의 권유로 혼자 월남했다. 혈혈단신 살아남기 위해 부두노동 구두닦이 등 안해본 일이 없는 그는 독학으로 검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 변호사가 됐으며 77년 신학대에 들어가 목사안수를 받았다. 지금은 변호사일을 접고 목회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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