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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5월 25일 2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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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을 맞는 소감과 남은 1년 동안 검찰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말씀해주시죠.
“취임 당시는 검찰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직이 사분오열돼 있었고 후배 검사들은 선배를 안믿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국민에 대한 봉사나 검찰의 존재가치 등은 생각할 수도 없었지요. 그래서 우선 조직을 추슬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젊은 검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저는 총장으로서 영광스러운 업적을 남기고 물러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검사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 국민의 신뢰와 검찰 본연의 위상을 되찾는데 초석을 다진 총장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남은 1년도 그렇게 조용히 착실하게 일해나갈 겁니다.”
―지난 1년간 검찰이 여러 정치적 사건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는데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개별적 사건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검찰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시대상황과 국민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한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자기성찰과 개혁이 부족했던 것이지요. 이 점을 명심해서 앞으로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정도(正道)와 원칙에 입각해 ‘이젠 검찰이 정신 차리는구나’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힘쓰겠습니다.”
―총장께서는 취임이후 ‘원칙과 기본이 선 검찰상’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옷로비사건과 파업유도사건 등 적지 않은 정치적 사건에서 검찰이 원칙과 기본을 일탈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일부 그런 오해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검찰의 처신에 문제가 있었던 탓이겠지요. 반성합니다. 그러나 개별적 사건들의 최종 결과를 보면 정확히 아실 겁니다. 우리는 크게 보아 원칙과 기본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믿습니다. 다만 성급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총장께서는 정치권, 특히 현 집권층에 대해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습니다. 검찰내 특정 실세들에게 휘둘린다는 말도 들리고요.
“일부 그런 소리가 있는 걸로 압니다. 제가 현 정권과 아무런 연고가 없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치적 입지가 없다거나 누군가에게 휘둘린다거나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검찰권을 행사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근 문제된 린다 김 사건과 고속전철 차량선정 의혹사건 수사에서도 검찰의 이중적 자세가 비판을 받았습니다. 린다 김 사건은 정말 범죄 단서가 없어서 수사를 못한 겁니까.
“린다 김이 귀국해 자진출두하는 바람에 수사가 재개됐던 것인데 수사검사는 린다 김을 4번이나 불러 조사했습니다. 98년 송치된 군사기밀 유출사건만 조사하려 했다면 4번이나 불렀겠습니까. 이것저것 다 찔러봤습니다. 린다 김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검사에게 혼났다”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중립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여론으로부터의 중립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역비리 수사는 범죄 단서가 있어서 시작한 겁니까. 뚜렷한 범죄단서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총선 전에 요란하게 수사에 나선 것은 여당의 총선전략과 관련있는 것 아닌가요. 당선자 한명만 불구속기소하는 성과에 그쳤다는 것이 그것을 입증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2월14일로 기억하는데 ‘병역비리는 총선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이다’라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또 일부 정치인들은 총선을 앞두고 ‘빨리 확인해서 누명을 벗겨달라’며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빈약한 수사결과를 말씀하시는데 지금까지 사회지도층인사를 포함해 49명을 구속하고 7명을 불구속했습니다. 정치인 자녀중에 면제경위가 석연치 않은 경우가 더 있지만 시간이 오래돼 밝혀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총선 직전에 열릴 예정이던 옷로비 사건 첫 공판을 검찰이 연기신청해 총선후로 미루게 한 것을 두고 ‘검찰이 여당의 득표에 불리한 재판을 일부러 늦췄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 사건 주임검사가 서울지검 공안1부장으로 부임했는데 공안부장은 선거 주무부장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너무 바빠 공판준비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연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김태정 전법무장관과 박주선 전대통령 법무비서관을 기소했는데 법률적으로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일부 얘기도 있습니다. 공소유지에 자신 있나요.
“어제까지 상사로 모셨던 분을 그렇게 한 것은 인간적으로 못할 일이었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 분들의 행위가 위법이 아닌 것을 억지로 기소한 것은 아닙니다.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간부회의를 열어 충분히 검토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검찰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구심체이고 상징인데요. 총장 임기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시는지, 또 인사청문회 대상에 검찰총장도 포함돼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지요.
“제도보다 검찰구성원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총장부터 일선 검사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일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사청문회는 정치권의 결단에 달린 문제로 제가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검찰총장도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면 총장이 정치권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검사동일체 원칙’과 ‘상명하복’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막는 또다른 장애물이라는 지적이 있는데요.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검찰 전체가 일관성있게 움직여야 하고 그래서 검사동일체 원칙이 필요합니다. 물론 비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러나 약간의 비합리적인 운영이 있다고 해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젊은 검사들의 건설적 의견은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선거사범 수사가 한창인데 기소될 정치인은 얼마나 되는지요. 또 의원직을 잃게 될 정치인은 몇명이나 될 것으로 예상하는지요.
“일부 언론에서 당선자 10명 안팎이 기소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얼마나 될지 아직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 엄정한 결론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검찰의 기준은 ‘여당과 야당’이 아니고 ‘사안과 죄질’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 법조인은….
“법조인 선배중에는 훌륭한 분이 많습니다. 평검사라면 자유롭게 말하겠지만 검찰총장으로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해서 후일 얘기해드리겠습니다.”
<대담=육정수 사회부장·정리〓이수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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