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陽地로 끌어내자"…참여연대 '양성화 법률' 촉구

  • 입력 2000년 5월 12일 19시 14분


린다 김 사건과 경부고속철 로비의혹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로비양성화 법률을 제정할지 여부가 정치권의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화두는 참여연대가 제공했다. 참여연대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음성적인 로비를 막기 위해 미국처럼 가칭 ‘로비활동 공개법’을 제정해 로비스트는 국회에 등록한 뒤 로비를 의뢰한 고객명단과 로비내용 소득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신중한 자세인 반면 한나라당은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는 “16대 국회가 개원되면 바로 로비를 양성화하는 법률안을 제출하겠다”며 “법안에는 로비가 가능한 영역과 로비의 합법여부 판단기준 등 구체적인 기준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창화(鄭昌和)정책위의장도 “양성화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은 “지금의 우리 풍토에서 당장 미국식 로비관련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천정배(千正培)제1정조위원장대행은 개인의견을 전제로 “현행법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지만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여야의 움직임과 별도로 로비양성화법안 제정이 ‘로비의 양성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미국의 로비관행을 연구한 국회 행정자치위 유병곤(柳炳坤)전문위원은 “의회의 권력이 막강하고 입법 과정이 투명한 미국과 의원입법 비율이 낮고 권력이 행정부에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로비양성화법안이 투명화를 향한 출발점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지난해 6월 국내 최초로 로비스트 업체를 표방했던 글로벌커뮤니케이션스(사장 신현국·申炫國)의 경우 아직까지 정식로비를 한 건도 의뢰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 워싱턴특파원과 노태우(盧泰愚)정부 때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신사장은 “관련법이 정비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우리 정치문화상 합법적 로비가 자리잡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93년에도 공론화…시기상조論에 흐지부지

로비활동을 양성화하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문제를 정치권에서 처음 공론화한 것은 93년 12월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국회제도개선위에서였다.

당시 검찰의 정치인 수뢰수사가 잇따르자 국회제도개선위에서는 “차라리 미국처럼 로비를 양성화하는 법률을 마련해야 불법로비가 사라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국회사무처가 실무 차원에서 미국 로비제도에 대한 자료수집작업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비’라는 말속에 함축돼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에다 “아직은 시기상조다”는 반론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로비양성화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그 결과 국회제도개선위가 94년 4월 국회의장에게 제출한 최종보고서에서는 이 부분이 빠졌다.

이후 96년 한나라당 김중위(金重緯)의원을 중심으로 로비스트제도 도입이 추진되기도 했다.

김의원은 당시 “로비스트를 국회에 등록시켜 양성화하면 정치권을 따라다니는 뒷거래 의혹은 사라질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일부 여야 의원들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보였으나 사안의 성격이 민감해 많은 의원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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