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민주화 여야 진통]'1인지배 정당구조' 해체 몸살

  • 입력 2000년 5월 10일 19시 05분


16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 모두 ‘1인 지배 정당구조’를 깨야 한다는 논의 때문에 몸살을 앓는 모습이다. 민주당에서 나오는 ‘당내 민주화론’과 한나라당에서 나오는 ‘사당화(私黨化) 비판론’이 그것. 당내 초재선 그룹(민주당)과 비주류(한나라당)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같은 요구가 한국 정치권에서 과연 현실적인 ‘힘’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한 차례 ‘공리공론(空理空論)’으로 끝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당◇

여권에서는 '386세대 당선자'등 젊은 당선자 들로부터 산발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정치 민주화 바람이 현실적인 세(勢)를 얻어가는 분위기다.

○…9일 민주당 당선자 연수회에서 초 재선 젊은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당내 민주화 요구와 지도부 비판이 터져나온데 이어 10일 당무회의에서도 "현안에 대해 당이 활발한 토론을 해야 한다. 집행부 몇 명이 독점해선 곤란하다"(최명헌·崔明憲고문)는 주장이 대두.

이들 민주화 요구론자들이 말하는 민주화 란 상향식 여론수렴, 공직후보의 상향추천, 주요당직 경선, 크로스보팅 등을 망라하는 것으로 '1인지배 하향식 당구조와 국회운영'이란 기존의 정치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자는 것.

▼청와대도 '순리론' 강조▼

○…이들의 민주화 요구에 서영훈(徐英勳)대표도 적극 동조하고 나서 향후 당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 서대표는 9일 의정연수회에서 "우리는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자책론을 제기.

당내에서는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 윤철상(尹鐵相)조직위원장 등 총선 집행부가 대부분 동교동계라는 점을 들어 서대표의 이같은 언급이 결국 동교동계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대두.

한 당직자는 "서대표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지난 총선에서 노정된 당의 문제점, 최근의 '철학 부재와 무기력 상황'등에 대해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대표의 발언이 청와대의 의지와 무관치 않다는 것.

최근 청와대 인사들이 "대통령은 정치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고, 모든 것을 순리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순리론 을 강조하는 것도 눈여겨볼만한 현상.

▼당직 조기개편론 솔솔▼

○…서대표와 청와대측이 민주화론에 대해 호응하고 나섬에 따라 초선 당선자들에 대해 입조심을 강조하며 제어를 시도했던 권노갑(權魯甲)상임고문과 김옥두사무총장 등의 입장은 상당히 어색해진 상황.

김옥두사무총장은 이날 당무회의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이란 국가대사를 생각해서 언행에 신중해달라"고 거듭 주문했지만 반향은 크지 않은 분위기. 한 재선 당무위원은 "동교동계의 경고가 과거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는 정도로 평가.

여권 내에서는 이처럼 당 대표와 집행부, 젊은 당선자들 간에 의견이 상충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는 형편. 일각에서 당 체제 및 당직 조기개편론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얘기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한나라당◇

한나라당 비주류의 줄기찬 ‘당내 민주화’ 요구에 9일 16대 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일부 당선자가 가세하면서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 사당화(私黨化)’ 논란에 불이 붙고 있다.

○…비주류인 김덕룡(金德龍)부총재는 “1인 보스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DJ와 YS도 당내 비주류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며 “비주류를 인정하지 않는 당이 사당이 아니고 뭐냐”고 비난.

이에 대해 이총재측은 “여당을 보라. 비주류의 목소리가 나오는 당이 무슨 사당이냐”고 반박. 그러나 비주류측은 “여당과 야당을 수평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재반격.

○…비주류측이 앞세우는 또 다른 사당화의 근거는 인사와 의사결정의 전횡. 비주류측은 “9일 연찬회에서 경선 출마자인 이총재와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 등이 120여명에게 할애된 자유토론 시간과 맞먹는 시간 동안 마이크를 잡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분개.

김덕룡 박근혜(朴槿惠)부총재는 “주요 당무의 의사결정을 총재와 총재단의 합의제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총재측은 “단일지도체제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일축.

○…이런 논란보다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교차투표(크로스 보팅)’의 허용여부. 민주당내의 교차투표 허용 요구와 아울러 한나라당 내 비주류와 일부 초선 당선자들도 이를 본격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총재는 “교차투표는 당론이 없거나 당론이 교차투표하기로 했을 때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상태. 이총재의 한 측근은 “민주당 내 초선들의 요구는 민주화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레임덕의 표출”이라고 폄하.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3김씨가 주도한 정당처럼 돈과 조직으로 사실상의 상명하복(上命下服) 관계를 이루는 당을 ‘사당’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한나라당을 사당화됐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 즉 이총재가 돈과 조직으로 의원들을 모았다기보다는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이총재 주변에 모였다는 것.

이총재의 한 측근은 “공천 파동 때 주류의원들조차 빠져나갔다. 이런데 무슨 사당화냐”며 “총재가 의사결정을 독단적으로 한다는 말이 있으나 당헌상 총재의 권한을 행사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

그러나 이총재가 단일지도체제 당헌을 자파 세력 확대에 철저히 활용했다는 데는 별다른 이론이 없는 상황.

아무튼 ‘공당(公黨)’의 전범(典範)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거진 한나라당의 사당화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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