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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3일 2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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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갑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출마선언 이후 ‘이회창 당선’이 기정사실화되다시피 했으나 인천 계양―강화갑은 국민회의 송영길(宋永吉)후보와 한나라당 안상수(安相洙)후보가 한때 오차범위내에서 접전을 벌였다는 게 국민회의의 주장.
국민회의 김경재(金景梓)총재권한대행비서실장은 3일 오전까지만 해도 “송후보가 현재 1천표 정도 뒤지지만 여론조사에 나타나지 않은 대우자동차 노조원 3천여명이 ‘친(親) 송영길’ 표임을 감안하면 ‘외부변수’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한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송후보측은 이날밤 패배가 확정되자 “안상수후보를 맹렬히 추격, 여론조사 오차범위 내에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렸으나 ‘옷사건’이 터진 이후 지난달 말부터 10%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고 실토했다. 또 의료보험료 대폭인상에 따른 불만도 주요한 패인 중 하나였다는 게 송후보측의 분석.
그나마 ‘고급옷 로비의혹사건’ 이후 급락한 지지율을 간신히 끌어올리고 있는데 검찰이 2일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까지 이에 가세, 결정적인 찬물을 끼얹었다고 송후보측은 주장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송파갑도 한때는 투표율이 낮고 2만여 가구가 넘는 재건축조합 세대를 끌어들이기만 하면 자민련 김희완(金熙完)후보의 ‘신승(辛勝)’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하지만 투표율이 높게 나타나고 큰 표차로 한나라당 이총재가 낙승하자 역시 ‘의풍’이 주된 패인이라고 자인했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