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항명사태]『정치시녀화』 폭탄선언

  • 입력 1999년 1월 28일 07시 46분


이종기(李宗基)변호사 수임비리사건으로 큰 외상을 입은 검찰은 심재륜(沈在淪)대구고검장의 돌발적인 ‘폭탄선언’으로 엄청난 내상을 입은 모습이다.

심고검장의 성명으로 촉발될 검찰 내부의 논쟁은 단순히 수임비리사건의 처리뿐만 아니라 ‘권력과 검찰의 위상’이라는 검찰상의 정립과 직결된 과제에까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뇌부는 심고검장을 비롯한 검찰 내부의 반발에 명운(命運)을 걸고 대처한다는 방침을 세워 당분간 검찰 내부의 격렬한 투쟁양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평소 검찰에 불간섭 원칙을 밝혀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권력유지의 효율적인 수단중 하나인 검찰의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도 관심거리다.

심고검장이 폭탄선언을 하게 된 경위와 이 사건에 대한 검찰 내부의 시각과 처리 전망을 살펴본다.배경심고검장은 이변호사로부터 떡값과 향응을 받았다는 이유로 검찰 수뇌부가 사표를 종용하자 성명발표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국민의 중수부장’이라는 명성까지 얻었던 심고검장으로선 ‘떡값검사’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는 총장 후보자의 한 사람인 대검차장이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판단에 따라 나름대로의 ‘자위권’을 발동한 것으로도 보인다.

심고검장의 결심은 검찰 수뇌부가 전혀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죄없는 젊은 검사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일선 검사들의 반발 움직임에 힘을 얻어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분석된다.

일선 검사들은 사표를 종용받거나 사표를 낸 검사중 상당수가 청렴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동정심을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정치시녀화 논쟁심고검장은 검찰 내부에서는 금기시된 ‘검찰의 정치권력 시녀화’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심고검장은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을 “검찰 수뇌부와 정치검사가 수많은 시국사건과 정치인사건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사건을 정치적으로 처리해 국민이 검찰을 정치권력의 시녀로 인식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권력의 요구가 없어도 스스로 권력의 뜻을 파악해 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으며 이같은 행태는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현재의 검찰 수뇌부를 비판했다.

그는 특히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이 김영삼(金泳三)정권에 의해 임명됐다는 ‘태생적 한계’를 언급,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이다.

심고검장의 이같은 지적은 김총장이 지난 1년간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26일 국회의 비리 의원 감싸기 행태를 공박하는 등 검찰이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듯한 행태를 보였다는 소장 검사들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심고검장은 김대중정권과 현 검찰 수뇌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권이 교체된 뒤에도 권력에 맹종하여 검찰조직의 기초를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현재 검찰의 위상을 재점검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사건전개 전망심고검장의 ‘항명(抗命)’으로 인해 검찰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검찰 수뇌부의 이종기변호사 사건 처리방향에 대해 불만을 품은 상당수의 검사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집단행동을 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검사는 “울고 싶을 때 뺨을 때려준 꼴”이라며 “현 수뇌부에 불만이 많은 일선 검사들의 연판장돌리기 등 집단행동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미 떡값을 받은 혐의로 사표를 낸 검사들까지 동참해 집단행동을 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 등 수뇌부는 심고검장 항명사건에 관계없이 예정대로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사건의 진행방향은 짐작하기 힘든 상황이다.

〈서정보·조원표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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