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시대/전문가 좌담회]『공명선거 진일보』

  • 입력 1997년 12월 19일 20시 24분


《제15대 대통령선거 결과 나타난 민심은 무엇을 뜻하며 국민회의 김대중후보 당선의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은 무엇인가. 그리고 차기 정권의 과제는 무엇이며 앞으로 정치권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21세기의 문턱에서 치른 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하고 향후 정국을 전망하는 긴급 좌담회를 19일 본사 회의실에서 가졌다. 좌담회에는 조중빈(한국선거연구회장·국민대) 문정인(연세대) 이정희교수(한국외국어대)가 참석했다.》 △이정희교수〓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하자면 우선 지역적 투표성향이 그대로 지속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김대중당선자는 호남지역에서는 90% 이상 압도적 지지를 얻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반DJ라고 할 수 있는 충청도에서 김당선자의 지지가 높게 나왔습니다. 이는 김종필자민련명예총재의 공헌입니다. 영남지역 중에서는 부산에서 김당선자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왔지만 이곳 안의 호남세를 감안하면 지역적 투표성향이 완화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긴 해도 영남표도 과거보다 DJ쪽으로 많이 움직인 것은 사실입니다. 수도권에서는 이회창후보의 득표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면서 DJ의 당선에 기여했습니다. 이인제후보의 선전이 DJ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회창후보의 아들 병역 시비 등 여러가지 이슈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황장엽 망명, 천도교령 오익제의 월북에 이어 서울대 고영복교수 간첩사건과 같이 과거 같으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북풍(北風)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정인교수〓이번 선거의 특징은 크게 네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역구조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 선거였습니다. 또 여권이 분열하고 정치자금을 포기하는 등 집권당의 프리미엄없이 치러진 선거였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관권개입도 없었습니다. 야당이 절묘하게 단일화된 것도 특징의 하나입니다. 1개 당으로 합쳐지면 깨어진다는 것을 과거 경험으로 아는 「정치 9단들」의 경륜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TV토론이 경선불복 비자금폭로 북풍 병역특혜 등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치명적 약점을 장기간 노출시키면서 이것들을 무효화, 또는 희석시켜 후보간 차별성을 없애버렸습니다. △조중빈교수〓지난 대선에서 김당선자는 32%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40%를 넘었습니다. 그 차이 8%포인트 내외를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당선자가 당선된데는 지역주의의 잔존, 여권 분열, 김영삼대통령의 실정, 이인제후보의 분전 등 여러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김당선자가 싫었다는 감정적인 이유는 해소되지 않았을 텐데 이에 대해 김당선자가 유권자들을 조심스럽게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고 국민들도 받아들인 게 아닌가 합니다. 전남북이 똘똘 뭉치고 경북에서 상당한 응집력이 나타나 과거보다 심한 지역적 성향이 나타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상쇄한 게 서울지역과 경남지역인데 후보를 내지 못해 어쩔수 없이 진일보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정치행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습니다. △이교수〓관권개입이 없었다는 점은 민주주의 진일보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하급관리들이 여야를 견제할 수 있게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교수〓김영삼정부가 민주적 공고화과정을 밟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가시화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번 선거는 민주적 공고화로 가는 징표가 아니냐는 전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조교수〓8% 포인트가 관건이라고 했는데 이를 통해 민심을 살펴보면 지역을 바탕에 깐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평가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미래지향적인 성격보다 김영삼정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평가의 결과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교수〓이번 선거에서 세대교체 3김(金)청산 정권교체가 큰 쟁점으로 떠올랐는데 결론은 정권교체로 기울었습니다. 실정(失政)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선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교수〓간발의 차이에 의한 정권교체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정에 대한 평가가 자리잡았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위기상황에서 보수기반에 선택적 개혁 성향의 이회창후보보다 진보기반에 보수적 정치를 내세운 김당선자를 선택한 것은 「계산하는 선거」보다 「지역정서」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고 분석합니다. △조교수〓이인제후보의 부산 경남에서의 선전은 이 지역이 배출한 김대통령을 짓밟는 이회창후보도 싫고, DJ도 싫어 유권자들이 이인제후보로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 성향이죠. △이교수〓지역주의도 작용했겠지만 지역주의에 바탕을 둔 지구당위원장의 조직관리도 많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국민회의의 경우 김대중 당선자의 내생적 조직과 JP의 조직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또 이인제후보의 경우 지구당위원장이 활발하게 움직인 부산에서 선전하지 않았습니까. △문교수〓이번 선거가 대과없이 잘 치러졌지만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민주주의사회에서 유권자들이 느끼고 갈망하는 「축제」여야 할 선거가 「브라운관 선거」가 되지 않았느냐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유권자들의 참여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옥외집회 등의 부작용을 우려, 선거법이 규제중심으로 개정됐기 때문입니다. 개정 선거법에서 선거운동의 80%를 언론을 통해 하는 미디어 의존적인 선거운동 방법도 개선했으면 합니다. 선거일 23일전에 여론조사결과를 공표할 수 없도록 한 규정도 개선대상입니다. △조교수〓김당선자 당선의 근인(近因)으로는 우선 여권분열과 이회창후보의 아들 병역문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인(遠因)을 찾는다면 YS정권이 갖는 정통성 시비에 있습니다. 3당통합으로 여당과 야합하는 형식으로 정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임기내내 시달렸고 이것을 보상하려고 개혁정치를 실시하는데 무리수를 두었던 거죠. △이교수〓이번 선거결과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DJP연합이라는 지역연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달성했지만 이것이 가진 태생적 한계 역시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계층적 지지성향을 잘 극복해 나가면서 IMF체제하에서 모든 국민에게 적절히 고통을 분담하게 할 것인가 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문교수〓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차선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볼 때 「구조적 변수」와 「개인적 인물변수」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인물변수에선 김당선자가 단연 앞섰다고 살펴야 할 거예요. 김당선자의 경륜과 지식이 미디어정치와 맞물려 중산층의 부동표를 상당부분 흡수했다고 봅니다. 김후보는 그러나 40%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조교수〓김당선자가 과거 대통령보다 진보적인 정책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많이 보수화했지만 대북관계나 경제정책 등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성향은 변할 수 없다고 봐요. 그러나 일반유권자가 그렇게 이념지향적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진보적 정책을 펴려면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급격한 변화를 표방하지 말고 본인의 진보적 성향을 기득권세력과 조율하면서 실현가능한 정책대안을 도출해야 합니다. 정책의 일관성과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추진했으면 합니다. △이교수〓과거 민주투쟁을 할 당시에는 상당히 폐쇄적인 정책결정과정도 필요했다고 봅니다만 국정운영에 따른 리더십은 양태가 다릅니다. 투명한 민주적 절차에 따른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이야기는 합니다만 실질적으로 투명한 민주적 절차를 만들어야 해요. 단기적으로는 60%의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교수〓김당선자에게는 장기비전제시 정책제시 관리과제 등 3가지 과제가 있다고 봅니다. 정권인수팀은 21세기 한국민의 생존 번영 복지 등에 관련해 국민이 납득할 방향으로 중장기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책제시과제로는 경제위기극복 남북문제 국민통합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IMF체제를 1년반만에 탈출한다든지, 남북문제를 1년만에 해소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성급하게 추진해서는 안되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제일 우려되는 것이 관리과제입니다. 김당선자는 아는 것이 많아서 정책에 관한 간섭도가 높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청와대와 관료간의 마찰이 심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교수〓김당선자는 내각을 구성할 때 거국비상내각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는 권력독점을 막고 행정권의 원활한 이양을 위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자민련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 국민신당도 포함시켜 모든 정당이 경제난국과 국민불안을 해소하고 통합을 이끌어야 합니다. △조교수〓가신을 중심으로 충성심 일변도의 청와대 조직이 되어서는 안되고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보면 지역갈등의 골이 20∼30년 전만해도 지금처럼 극렬하게 감정적으로 대립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역감정의 해결을 지도자에게만 맡겨서는 안됩니다. 이번 선거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대선에서 이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실마리를 보여줬습니다. △문교수〓김당선자의 민중지향적인 이미지는 상황이 만든 것이지 본인이 만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IMF상황과 남북관계를 볼 때 최소한 집권 전반부만이라도 국민이 도와주지 않으면 김대중대통령은 최악의 대통령이 될 우려도 있습니다. 김당선자는 김영삼대통령의 실패를 겸허히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교수〓정치체제가 발전하려면 승자의 아량이 필요합니다. 한풀이나 보상을 추구하다보면 지역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교수〓김당선자는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인프라를 구축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30∼40년동안 경제일변도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이 정당화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IMF위기를 탈출하고 국가신인도를 회복하는 데는 정치력이 필요하고 이는 정치인들의 몫입니다. △문교수〓정권교체의 의미는 지도자보다는 정당이 바뀐다는 것이지요. 이번 기회에 정당제도가 양당구조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해체를 막아야 합니다. 김당선자는 정치지도력을 발휘해 정당을 안정화하고 활성화하는 인프라를 마련해야 합니다. △조교수〓당장 인위적 정치개편이나 내각제 개헌을 위해 정치적 다수파를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문교수〓한나라당도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제1야당의 면모를 갖추고 진정한 정책정당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조교수〓이번 선거로 지역주의는 탈색되고 민주화가 더이상 이슈가 될 수 없게 되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유권자들은 각 정당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보장해 줄 수 있는지를 따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책대결의 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봅니다. 〈정리〓양영채·김정수기자〉 ▼ 참석자 조중빈(국민대 교수) 문정인(연세대 교수) 이정희(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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