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5시20분. 자명종이 울기도 전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후보는 일산 자택에서 눈을 떴다. 오늘은 진주∼마산∼창원∼부산∼울산 등 PK지역을 버스로 도는 「강행군」이 예정돼 있다.
커피를 들며 김후보는 조간신문을 펼친다. 때가 때인지라 요즘은 경제면을 읽는 시간이 길어졌다.
오전 6시, TV뉴스를 잠시 본 뒤 옷을 갈아입는다. 코디네이터 김남주(金南珠)씨의 도움으로 매무새를 갖춘다. 지난 5일 대구유세 이후 감기기운이 돌아 목도리에 군청색 코트로 중무장했다. 이어 자택에 들른 박지원(朴智元)특보, 경호담당 김옥두(金玉斗)의원과의 아침식사. 식성이 좋은 김후보는 거뜬히 상을 비우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당직자들이 줄을 서있다. 처조카 이영작(李榮作)박사가 자체조사한 여론조사결과를 보고했고, 임채정(林采正)정세분석실장 등이 귀엣말로 뭔가를 보고한다. 진주행 8시 비행기에 오른 김후보는 이내 잠이 들었다. 짬이 날 때마다 김후보는「토막잠」을 잔다.
첫 방문지는 진주중앙시장으로 사천공항에서 30분 거리.
시장에선 정한용(鄭漢溶)의원, 김정길(金正吉)부총재 등이 벌써 「판」을 벌였고 그룹 「코리아나」가 『찬란한 내일의 승리를 위해 빛나라 김대중…』이라는 개사곡으로 흥을 돋우고 있다. 김후보는 바로 연단에 오른다.
『대통령선거를 왜 합니까. 여당이 정치를 잘했으면 대통령 시키고, 못했으면 정권을 바꾸는 게 선거입니다』
5백여명의 청중을 상대로 한 김후보의 연설이 힘을 받는다. 그러나 연설 예정시간 5분을 넘기자 단하의 임채정실장이 연신 시계를 들여다 본다. 마이크만 잡으면 연설이 길어지는 김후보에게 보내는 「무언(無言)의 시위」다. 혹시 목이라도 쉬면 내일로 예정된 TV유세녹화는 어렵다.
『그만 하시게 해』 유재건(柳在乾)비서실장의 다급한 목소리도 들린다.
다음 유세지는 1시간 거리인 마산공동어시장. 버스안에서 보좌진이 모 일간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표정이 나쁘지 않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바닷바람 탓에 마산은 무척 춥다. 유세내용은 진주 때와 다를 게 없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야 유권자에게 확실히 각인된다는 김후보의 「유세 철학」 때문이다.
이내 점심시간. 김후보는 이날 입당한 1백50여명의 경남지역 수산업계 대표자들과 복국으로 점심을 마쳤다. 이어 창원 기아중공업에 도착,고용문제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30여분 공장을 둘러본 뒤 부산으로 출발했다.
오후 3시반 부산 광복동 부영극장 사거리에서 김후보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외지인들이 많아 김후보 지지도가 매우 높다는 울산이 오늘의 최종 목적지. 오후 6시, 주리원백화점 앞 거리에는 벌써 어둠이 찾아왔다. 다른 지역보다 열기가 뜨거운 탓인지 김후보는 「유세제한시간 5분」을 또 넘겼다.
다시 비행기편으로 서울에 도착한 김후보는 일산 자택에 도착, 힘겨운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부산〓윤영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