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대표가 벼랑끝 위기에 몰린 느낌이다. 후보사퇴론이 당내에 부쩍 확산되고 민주계와 민정계는 물론 소장의원들까지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반(反)이대표 세력의 연쇄탈당이 초읽기에 들어갔으며 결국 당이 깨지고 말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집권당이 대선을 불과 80여일 앞두고 이 지경으로 표류하게 된 것은 이대표의 정치력 미숙에 기인하는 바 크다.
이대표는 그동안 당내기반도 확립하지 못한채 밖으로 눈을 돌려 누구하고든 연대해 대선승리를 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정체성(正體性)도 확보하지 못한채 보수와 개혁 사이를 우왕좌왕했고 그것이 당총재인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를 자초했다. 김대통령의 퇴임후 입지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사전 상의 없이 불쑥불쑥 차별화전략을 내놓아 당내 제세력 간의 반목과 갈등만 증폭시킨 결과가 됐다.
더욱 답답한 것은 당직을 놓고 갈등을 봉합해 보려다 오히려 이를 키운 점이다. 당 중진이란 사람이 입맛에 맞는 당직을 안준다고 어제까지의 협조자세에서 표변해 이대표의 발목을 잡고 흔드는 모습을 보인다. 총재직 이양 전당대회에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공공연히 결별의사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대표의 영(令)이 안서는 것은 둘째 문제고 중진들이 자리싸움 따위에 골몰하는 이런 정당이 제대로 선거를 치를지 의문이다.
집권여당의 집안싸움과 위기는 그 당만의 사정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고나면 파벌다툼에 골몰하고 당안팎을 벌집 쑤시듯 휘저어 놓는 정당이 도대체 언제 국정과 민생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도 정권재창출을 꿈꾸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이대표는 이제라도 최선을 다해 당부터 추스르기 바란다. 자신의 정치력으로 안된다면 사퇴서를 냈지만 아직은 당총재인 김대통령의 조력과 자문을 받아서라도 내부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그러는 것이 여당뿐 아니라 정국전반에 드리운 불안을 걷어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