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심용 적자예산 안될 말

  • 입력 1997년 9월 3일 20시 13분


결론부터 말해 내년 예산을 적자로 편성해선 안된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청와대가 적자예산을 감수하고라도 예산규모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입을 초과하는 세출예산은 지금 상황에선 경제를 망치는 일이다. 표를 겨냥해 팽창예산을 주장하는 모양이나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이제 국민들은 선심성 공약이나 남발하는 정당을 지지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홍사덕(洪思德)정무장관이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가 경제운용에 본격 간섭하려는 신호탄이다. 정부안대로 5% 늘어난 75조원의 예산을 짜는 데도 1조5천억원은 세금을 인상하거나 국채발행으로 마련해야 한다. 신한국당 요구대로 9%를 증액하려면 무려 4조3천억원의 국민부담이 추가된다. 국민에게 세금부담을 가중시켜 예산규모를 늘리려는 발상은 무책임하다. 국민경제는 정부 기업 가계 세 경제주체가 합심해야 잘 된다. 경제난국을 맞아 기업들은 팔 다리를 잘라내는 구조조정에 안간힘을 다하고 가장이 직장에서 쫓겨난 가정에선 아내와 가족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가계부 적자를 메우느라 고통이 극심하다. 우리 경제는 각 경제주체가 거품을 걷어내고 안정기조를 유지해 체질을 강화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앞장서야 할 정부가 적자예산을 짠다는 건 이런 고통분담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경제가 좋을 때는 다소의 적자재정도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더라도, 야당이 정권교체를 못하더라도 경제만은 살려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세금을 늘리기보다 예산의 낭비를 줄이고 덜 급한 사업은 뒤로 미루는 일이 더 급하다. 예산당국은 경제를 왜곡하는 정치논리에 밀려 긴축예산 의지를 양보해서는 안된다. 정치권도 이제는 선심예산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생각을 버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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