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어지는 「색깔론 공방」…여야,『지속땐 공멸』 추춤

  • 입력 1997년 8월 23일 20시 25분


吳益濟(오익제)씨의 월북으로 촉발된 정치권의 「1차 색깔전쟁」의 수위가 한풀 꺾일 조짐이다. 물론 싸움을 주도했던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는 23일에도 공방을 계속했다. 하지만 양당은 요 며칠새 새로운 「카드」를 꺼내지 않아 「확전(擴戰)」을 꺼리고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같은 기류를 주도한 것은 「야당총재의 사상검증」이라는 명분아래 선공(先攻)을 했던 신한국당이다. 신한국당은 색깔공방을 계속하는 동안 몇차례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표의 흐름을 면밀히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기대와는 달리 李會昌(이회창)대표의 지지율이 「제자리 걸음」을 계속했고 국민회의 金大中(김대중)총재의 지지율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오히려 이대표의 측근들조차도 『이대표가 새정치를 한다면서 실제로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김대중총재가 6.25전쟁중 미해군함정에 끌려가 총살당하기 직전 친구의 도움으로 탈출했다』는 李思哲(이사철)대변인의 논평을 주한 미공보원이 정면으로 부인한 것도 신한국당의 「전의(戰意)」에 찬물을 끼얹었다. 신한국당은 국민회의의 「기획입북설」 제기로 색깔공방이 국민회의와 안기부간의 수사공방으로 변모하자 「보조공격수」의 역할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다만 국민회의가 姜三載(강삼재)사무총장 등을 고소 고발한 이상 김총재를 비롯한 국민회의 관계자에 대한 맞고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국민회의도 마찬가지다. 국민회의는 신한국당이 김총재의 사상 및 병역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한때 이대표의 부친 弘圭(홍규)옹의 색깔시비로 맞불을 놓는 방안도 검토했다. 홍규옹이 50년3월 「법조계 프락치사건」으로 구속됐다는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내용 등 각종 자료를 수집했다. 하지만 『색깔공방의 장기화는 별로 이로울 게 없다』는 판단에 따라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신한국당이 쏘아대는 산발탄에 맞대응만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색깔공세가 완전히 잠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한국당 강총장은 『여당이 최대한 인내하겠다』면서도 『그러나 야당의 프리미엄을 이용한 터무니없는 공세에 대해서는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2차,3차 색깔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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