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李會昌(이회창)대표가 위기상황 타개를 위해 배수진을 치는 듯한 분위기다. 즉 그동안 쓰기를 주저했거나 꺼렸던 카드들을 잇달아 꺼낼 태세를 보이고 있다.
당총재직의 조기이양 추진이 그 첫번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이대표는 22일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총재직 이양과 관련, 『다수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총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던 종전과는 다른 태도다.
姜三載(강삼재)사무총장도 『당총재직 이양시기에 대해서는 총재의 의중과 관계없이 대선전략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다』며 이대표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당총재직 조기이양이 이뤄지면 이대표 중심체제로 당을 신속히 안정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반면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울타리역(役)」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대표가 이를 추진하려는 것은 당내 갈등이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으나 김대통령의 역할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카드는 집단지도체제 도입이다. 이대표는 이날 『복수부총재제 도입 외에 다른 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공동선대위원장제 도입 등 여러 가지 안을 검토 중임을 시사했다.
이대표는 당초 집단지도체제 도입에 대해 당내 계파활동을 양성화, 당력을 분산시킬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경선탈락후보들을 당내로 끌어들이는 게 급선무인 때문이다. 특히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바탕으로 대선 독자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李仁濟(이인제)지사의 요구(복수부총재제 도입)는 이대표에게 적잖은 압력을 가하고 있다.
세번째 카드는 이대표의 지론인 역할분담론의 구체화다. 이대표는 대선 전에 집권 후 당정요직 보장을 골자로 하는 역할분담구도를 경선탈락후보 등 당내 유력자들에게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표는 당총재직 조기이양을 추진하면서도 총재직을 이양받을 때까지는 당내 동요 무마를 위한 지렛대로 김대통령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대표측은 이대표가 집권여당 사상 첫 자유경선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후보라는 명분과 이대표가 무너질 경우 당도 공중분해될 수밖에 없다는 「대안부재론」으로 지지도 하락에 따른 뒷공론을 잠재운다는 구상이다.
김대통령이 21일 이대표와의 청와대주례회동에서 「정치일정 불변」을 천명한 것도 이같은 인식에 바탕한 것으로 이대표측은 해석하고 있다. 김대통령으로서도 이대표로 승부하는 것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는 시각이다.
이대표의 대선가도에 최대의 잠재적 위협요소인 이지사와 朴燦鍾(박찬종)고문의 독자출마 저지를 위해서도 김대통령이 직접 나설 것으로 이대표측은 기대하고 있다.
김대통령 발언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이나 비주류의 시각은 두 갈래다. 김대통령이 이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김대통령으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다만 현재 김대통령의 흉중이 복잡할 것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그리고 당총재직 이양시기에 대한 청와대와 당의 조율과정이 향후 여권의 기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