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산주의 기원 파헤친 이정식 교수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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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연구 1세대… 美우드로 윌슨상
김일성 중국공산당 입당 누락 밝혀


북한 연구 1세대로 뚜렷한 학술적 업적을 남긴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사진)가 17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로버트 스칼라피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함께 1973년 쓴 대표작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로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흐름을 1500여 쪽에 걸쳐 정리한 이 책은 출간 직후 미국 정치학회의 최우수 저작상인 우드로 윌슨상을 받았다. 1931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자란 고인은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4개 언어에 능통해 각국의 광범위한 1차 사료를 섭렵할 수 있었다. 고인은 이 책을 쓰기 위해 1957년부터 17년에 걸쳐 한중일의 방대한 문헌을 분석했다. 신종대 한국냉전학회장(북한대학원대 교수)은 “현재까지도 이 분야 통사에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대체할 만한 연구 업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 책에서 고인은 북한 당국이 김일성 공식 전기에서 1931년 중국공산당 입당을 누락한 사실을 밝혀냈다. 김일성을 외국 공산당에서 성장한 인물이 아닌, 순수한 한국인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김일성과 중국공산당의 초기 관계를 삭제했다는 것. 또 광복 직전 소련 당국이 4년에 걸쳐 김일성을 교육, 훈련한 사실 등을 지적하며 소련이 연안파 공산주의자들에 비해 김일성을 관리하기 쉬운 상대로 봤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일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선 엄정함을 유지했다. 한때 학계 일각에서 제기된 ‘가짜 김일성’ 논란과 관련해 김일성이 1930년대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활동에 참여했음을 적시했다.

고인은 해방 후 북한에서 쌀장수로 일하며 공산주의 실상을 목격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월남해 미군의 중국어 통역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고인은 1963년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과 교수가 됐다. 2018년 인촌상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우명숙씨와 사이에 2녀가 있다. 28일 오전(현지 시간)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장례식을 거쳐 인근 조지워싱턴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공산주의 운동사#저자#이정식 교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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