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영전에…” 권기옥 지사가 쓴 만장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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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롭고 속된 길 걷지 않았네” 초서로 쓴 7언 절구 추모 한시
임정 활동 통해 서로 알게된 듯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권기옥 지사가 심훈 선생을 애도하며 쓴 만장. 충남 당진시 송악읍 심훈기념관에서 발견됐다. 당진시 제공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권기옥 지사가 심훈 선생을 애도하며 쓴 만장. 충남 당진시 송악읍 심훈기념관에서 발견됐다. 당진시 제공

국내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 권기옥 지사(1901∼1988·사진)가 시인 심훈(본명 심대섭·1901∼1936)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장(輓章)이 충남 당진 심훈기념관에서 발견됐다.

당진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념관 소장자료를 정리하다가 권 지사의 심 선생에 대한 추모시를 발견했다고 2일 밝혔다. 기념관 관계자는 이날 “권 지사 후손 등을 통해 만장의 필체가 맞는지 확인했다”며 “후손은 권 지사가 심 선생과 자주 교류했다는 증언도 들려줬다”고 말했다. 심훈기념관은 심 선생의 유품을 전시하고 그의 문학세계를 연구한다. 박물관 주변에 있는 심 선생 생가인 필경사(筆耕舍) 관리도 맡고 있다.

권 지사의 만장은 ‘哭小說家沈先生大燮靈座(곡소설가심선생대섭영좌·소설가 심대섭 선생의 영전에 곡하다)’라는 제목의 초서로 쓴 7언 절구 한시다. 심 선생을 어지럽고 속된 세계를 걷지 않은 인물로 표현했다.

‘聞道玉京卽此樓(문도옥경즉차루·하늘에 옥경 있다더니 이 빈소가 거기라네)/紅塵官海不同流(홍진관해부동류·번거롭고 속된 관리길 걷지 않았네)/春風到處美人恨(춘풍도처미인한·봄바람 일렁이면 미인들 한탄하고)/秋月明時孤客愁(추월명시고객수·가을 달 밝으니 외로운 나그네 시름에 젖는구나)’

권 지사는 만장을 마치며 스스로를 광생(狂生)이라고 낮춰 표현해 심 선생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다.

권 지사는 1919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다닐 때 비밀결사대인 송죽회에 가입해 3·1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독립운동에 투신해 상하이 임시정부의 추천을 받아 1923년 4월 윈난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해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활동했다. 이후 중국 공군에서 10여 년 복무하며 약 7000시간 비행하는 동안 일본군을 폭격하기도 했다. 1977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심 선생은 1924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썼다.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소설에 ‘상록수’가 당선돼 각광을 받았다. 1930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쓴 시 ‘그날이 오면’으로 저항시인으로도 불린다.

이 만장이 발견되기 전까지 권 지사와 심 선생이 서로 알고 지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었다. 장승률 당진시 학예연구사는 “심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했던 사실이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두 분은 임시정부를 통해 서로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국내 최초 여성 비행사#독립운동가 권기옥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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