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꿈나무재단 32주년]100만 원으로 시작한 장학사업, 나눔 확산 들불로

  • 동아일보

콩쿠르 상금 전액… 손녀 이름으로…
최다 기탁자는 5억3430만 원 낸 父子

이제 막 고교생이 된 소녀는 무용콩쿠르에서 뜻밖의 상금을 탔다. 2, 3학년 언니들을 제치고 금상을 탄 거다. 상금 70만 원은 소녀가 평소 갖고 싶던 예쁜 옷을 사기에 충분한 돈이었지만 남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아빠처럼 남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화예고 2학년 최소희 양(17)은 지난해 6월 제46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탄 상금 전액을 동아꿈나무재단에 보냈다. 최 양은 1년에 한 번씩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동화구연 봉사활동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재능기부를 해왔다. 연극무대에 올라 장구춤을 추고, 가야금을 탔다. 콩쿠르에서 상금을 탔을 때는 제 힘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최 양은 “청소년도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걸 인식하고 5000원이라도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아꿈나무재단은 장학, 교육기관 지원, 청소년 선도, 학술연구비 지원, 신체장애인 지원사업 등에 기금을 출연한다. 매년 광복 독립유공자 후손, 북한이탈주민 장학생을 포함해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동아꿈나무재단은 한국폴리텍대에도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며 특히 장애학생을 위한 사업에 힘쓴다.

기탁자 중에는 손녀들이 어릴 때부터 나눔을 체화하길 바라며 손녀 이름으로 기탁금을 보내는 할머니가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할머니는 손녀 한유하(22) 이은채 씨(21)의 생일에 선물을 주는 대신 그들의 이름으로 2009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3회에 걸쳐 총 600만 원을 기탁했다.

재단은 1971년 3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감귤농장을 경영하던 현암 오달곤(玄岩 吳達坤) 씨(1985년 작고)가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2020년)이 되면 가난한 영재를 위한 장학금으로 써 달라며 당시로는 큰돈인 100만 원을 일민 김상만(一民 金相万) 동아일보 사장(1994년 작고)에게 희사하면서 첫 삽을 떴다. 여기에 1975년 광고탄압사태 당시 동아일보가 국민과 애독자가 보내온 성금에 별도 출연금 3억 원을 합쳐 1985년 6월 꿈나무기금으로 기탁하면서 재단이 설립됐다.

재단 설립 초창기부터 32년 동안 나눔을 함께 실천한 강태욱 포스코 연구원(63)과 최혜선 씨 부부는 재단이 설립된 첫해부터 32회에 걸쳐 총 1억 원을 기탁했다. 부부는 10여 년 전 딸의 대학 입학을 기념해 딸 이름으로 한 번에 1300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기탁금을 낸 인물은 한 부자(父子)다. 김윤철 서울 관악문화원 원장은 1990년 2월부터 올 4월까지 239회에 걸쳐 4억6330만 원을 기탁했고, 김 원장의 아들인 김대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71회에 걸쳐 7100만 원을 재단에 보내왔다. 홍성훈 동아꿈나무재단 이사는 “부모와 자녀, 부부가 함께 기탁금을 보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나눔도 바이러스처럼 전염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기부는 계속된다. 4일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불우청소년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 달라며 동아꿈나무재단에 200만 원을 보냈다. 김 회장은 2010년부터 이번까지 14회에 걸쳐 2800만 원을 기탁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동아꿈나무#장학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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