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을 걷는듯 보낸 32년, 판사는 항상 스스로를 경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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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퇴임하는 민일영 대법관 “사법연수원서 후학 양성 계획”

“호랑이 꼬리를 밟듯이, 봄의 살얼음 위를 걷듯이(若蹈虎尾 涉于春빙·약도호미 섭우춘빙)”

16일 퇴임을 앞둔 민일영 대법관(60·사진)은 32년여의 판사 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묻자 이 글을 꺼내와 보여줬다. 민 대법관이 서예를 시작한 1994년 서예스승이 ‘몸과 마음가짐을 늘 조심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라’는 뜻으로 써준 서경(書經)의 한 구절이다. 민 대법관은 부임지를 옮길 때마다 이 글을 꼭 챙겨 다녔다고 한다.

대법관 생활 6년 동안 체중이 60kg에서 52kg으로 줄었다는 민 대법관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만큼 홀가분하지만 마음 한쪽에 아쉬움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 대법관은 퇴임 후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민 대법관은 재임 6년간 친일파로 매도당한 일을 두고두고 가슴 아파했다. 법 규정을 지킨 판결 때문이었다. 법에는 친일파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만 국가가 귀속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집 앞에선 연일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일부는 탑골공원에서 화형식까지 열었다. 민 대법관은 “나의 경기 여주 생가와 명성황후의 생가가 불과 15분 거리일 정도로 가깝다”며 “어릴 때부터 그 생가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는 말로 친일파 논란을 대신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화형식이 열린 이후 저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화형식이 열린 곳과 가까운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서 매달 한 번씩 노숙자 급식 봉사활동을 해 왔지요. 인생이라는 게 참 재밌지요?”

민 대법관은 후배 판사들에게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비록 적중하지는 못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대학(大學)의 한 구절을 새겨볼 것을 권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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