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잃은 낭랑18세, 11년만에 세상밖으로 ‘또각또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앓은 나윤이, 환우들과 5월 3일부터 사진전 출연

송나윤 양이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었다. 의족 때문에 마음껏 걸을 수는 없었지만 구두가 마음에 쏙 들었다. 사진전에 참가할지 고민했다. 자신이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을 앓았다는 걸 친구들이 모두 알게 될 테니까. 하지만 나윤이는 참가하기로 했다. ‘그걸 알든 모르든 난 똑같은 나윤인 걸.’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 제공
송나윤 양이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었다. 의족 때문에 마음껏 걸을 수는 없었지만 구두가 마음에 쏙 들었다. 사진전에 참가할지 고민했다. 자신이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을 앓았다는 걸 친구들이 모두 알게 될 테니까. 하지만 나윤이는 참가하기로 했다. ‘그걸 알든 모르든 난 똑같은 나윤인 걸.’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 제공
2012년 9월 27일자 A8면 보도.
2012년 9월 27일자 A8면 보도.
온통 처음 하는 일이었다. 얼굴에 곱게 분칠을 하고 속눈썹도 하나하나 붙여 올렸다. 공주가 된 것처럼 흰 드레스도 입었다. 무엇보다 예쁜 하이힐을 신었다. 준비된 구두 중 가장 낮은 굽을 신고도 휘청거려 제대로 걸을 수 없었지만.

나윤이(18·여)가 카메라 앞에 섰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을 예방하고 환우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사진전을 위해서다. 나윤이는 11년 전 이 병으로 두 다리의 무릎 아래를 잃었다.

뇌와 척수를 둘러싼 막이 수막구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조기 진단이 어려운 게 문제다. 24∼48시간 안에 빠르게 진행돼 5명 중 1명은 사지 절단, 피부 괴사, 뇌 손상, 청력 상실 등의 후유증에 시달린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 백신이 도입됐지만 아직 이 병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평소 ‘셀카’를 자주 찍는 나윤이지만 얼굴을 공개하겠다고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냥 어릴 때 다리를 다친 줄만 알았던 친구들이 모두 내가 앓았던 병을 알게 될 텐데…. 사람들이 사진에 악플을 달면 어떡하지?’ 2012년 서울시 산하 비영리단체로 인가받은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KMC)에 소속돼 홍보활동을 하면서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윤이는 큰맘을 먹었다. ‘계속 뒤에 숨어 있을 순 없잖아. 언젠가는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겪은 고통을 안 겪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활동을 시작한 거잖아. 용기를 내보자.’

초등학교 1학년 10월에 다리 수술을 한 나윤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수술했으니까 이제 다리가 다시 생기는 거야?” 날마다 스케치북에 다리를 그렸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고통만 커졌다. 무릎 위쪽과 팔의 괴사를 막기 위한 피부이식수술, 뼈가 자라 살을 뚫고 나오면 의족을 할 수 없어 1년 반∼2년마다 계속 해야 했던 수술…. 나윤이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그냥 죽여줘. 너무 힘들어서 못 살겠어.”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는 생각에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여름이면 반바지에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나윤이는 “만약 다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얻지 못했을 경험이 많다”고 말했다.

고교 3학년인 나윤이의 꿈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것이다. 나윤이는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제일 잘 알잖아요. 원래 의사가 꿈인데 성적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약사도 되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와 한국노바티스가 공동 주최하는 ‘Dear Tomorrows’ 사진전은 5월 3∼31일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커뮤니티갤러리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나윤이와 다른 두 환우가 용기를 갖고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병으로 비록 얼굴도 일상생활도 달라졌지만 이들은 내일을 꿈꾸고 있다. 그룹 코요태의 래퍼이자 사진작가인 빽가(백성현 씨)와 방송인 오상진 씨가 재능기부로 각각 사진과 오디오북 작업을 맡았다. 02-2124-8800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