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지도대신 나침반 쥐여줘라

  • 동아일보

조이 이토 MIT 미디어랩 소장

조이 이토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소장이 17일 인터넷 시대의 혁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G CNS 제공
조이 이토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소장이 17일 인터넷 시대의 혁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G CNS 제공
“워낙 실패한 적이 많아서 최대의 실패를 꼽기도 어렵네요.”

‘꿈의 연구소’라 불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4대 소장 조이 이토(일본명 이토 조이치·48) 씨는 이렇게 말했다. 17일 LG CNS가 개최한 ‘엔트루월드(Entrue World) 2014’의 기조연설차 한국을 찾은 그를 인터뷰했다.

숱한 실패를 겪은 이토 소장은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가능성을 보고 벤처사업가의 길로 접어든 후 트위터 플리커 등의 회사 설립 초기에 투자해 대박을 내며 유명해졌다. 그는 한때 대학을 중퇴하고 디스크자키(DJ)로 클럽을 전전하는 등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2011년 150여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지금의 자리를 맡았다. 그는 “이제 역사는 ‘인터넷 전(before Internet)’과 ‘인터넷 후(after Internet)’로 나뉜다”며 “새 시대에서 혁신을 이루기 위해선 새 원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 원칙이란 ‘지도보다는 나침반을 쥐여주는 것’ ‘미는 것(push)보다는 당기는 것(pull)’ 등이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 알쏭달쏭한 원칙들은 ‘인터넷 후’ 시대라는 배경으로 묶여 있다. 지도는 모든 환경들을 정해놓고 있는 가이드지만 나침반은 방향만을 지시한다. 이토 소장은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예로 들었다. “유튜브는 규칙이 정해진 조직이 아니라 ‘최고의 동영상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는 방향만 잡고 시작해 인터넷 환경에 따라 수없이 변화하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처음에는 소개팅 사이트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또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끌어다 쓰는 능력이 중앙에서 지식과 체계를 ‘밀어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MIT 미디어랩은 이 원칙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 특정 학문 분야를 정해놓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아무 분야도 아니라는 의미의 ‘반(反)학제적 연구’를 추구한다. 서로 별다른 연관이 없는 450가지 연구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 이토 소장은 “이론은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된다”며 “분야를 정해놓지 않고 정해진 이론 없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협업하다 보면 새로운 혁신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 택시 중개 프로그램 ‘우버(Uber)’, 숙박 중개 서비스 ‘에어비엔비(Airbnb)’ 등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전통 산업을 파괴하는 기업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이토 소장은 강조했다. “택시, 호텔 등 전통 산업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뚫을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죠. 기존 업체의 강한 반발은 그만큼 이 서비스들의 파급력이 강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버는 기존 택시 운전사들의 반발로 많은 나라에서 사용이 금지돼 있다.

그가 보는 한국은 매우 빠른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도 혁신 잠재력이 발휘되지 않고 있는 나라다. 이토 소장은 “아직도 많은 기업들을 ‘인터넷 전’ 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기성세대가 운영하고 있다”며 “‘인터넷 후’ 시대의 신세대가 경영을 주도하게 되면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통적인 조직 구조를 깨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매사추세츠공대#엔트루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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