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원전비리로 공기업인 한전 중심의 전력산업체계 전체와 이를 관리 감독하는 정부 및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과 정전에 대한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여름 무더위가 오기 전부터 전력 예비율 경보가 발령되는 등 우리 사회 전체가 전력대란 걱정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으며 산업체는 생산 활동을 축소하면서까지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전력대란을 빌미로 또 다른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가스공사가 자신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도입 이외에 민간에도 제한적으로 직수입을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가스공사 주장을 따져보려면 먼저 국내 LNG 수급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LNG 수입은 가스공사가 국내 수요량의 95%를 수입하고 있고 몇몇 민간발전사가 발전소에 들어가는 일부를 수입할 뿐이다. 이런 가스공사 독점체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만 유일하다. 가스공사는 LNG 수급의 안정성을 이유로 독점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인 일본도 30여 개의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가스공사가 연간 3600만 t 이상의 LNG를 수입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 구매자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깎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물량 확보에만 집중해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LNG를 수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LNG를 비싸게 수입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 바로 독점공기업 체제의 폐해이다. 최근 감사원은 일관된 기준 없이 부적격 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한 가스공사에 일관된 기준 마련을 지시했다.
국내 도시가스 사업자들은 가스공사로부터 LNG를 받아서 국민들에게 공급하고 있고, 민간발전사업자들도 가스공사에서 공급받아 발전기를 가동한다. 민간발전사업자들은 가스공사가 비싸게 사들인 LNG를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발전비용이 증가하고 결국 전기요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뿐 아니라 도시가스 요금을 낮추기 위해서는 현재의 가스공사독점체제를 개편하여 LNG 도입 과정에서 치열한 협상을 통해 한 푼이라도 저렴한 LNG를 도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대기업이면 안 된다는 비난도 문제다. 기업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당한 투자와 기업 활동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LNG 사업은 저장탱크 등 대규모 설비투자에 수조 원의 자금이 필요하고 수송 선박, 국제 LNG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등 위험요소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참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는 공기업과 민간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구분보다 어떤 형태의 기업이든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값싸게 제공하는 기업을 선호한다. 전력과 가스시장에서도 휴대전화 시장과 같이 다양한 가격과 제품을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경쟁이 가능한 구조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특정 기업이나 집단이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여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라면 천연가스 도입 시장에서도 독점 공기업체제의 폐해를 막기 위한 경쟁 도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