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사나이 서성호, 히말라야에 잠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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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호 등반대 에베레스트 등정 하루 만에 ‘날벼락’

운명이 갈라놓기 전까지 그들은 최고의 파트너였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0개를 함께 올랐다. 서로의 몸을 로프로 묶은 채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2010년 10월. 산악인 김창호 대장(44·몽벨 자문위원)과 함께 히말라야 시샤팡마(해발 8012m) 등정에 나선 서성호 대원(34)은 해발 6950m 지점에서 200m를 추락했다. 그러나 다행히 카메라만 잃어버리고 목숨은 건졌다. 까마귀들이 눈 속에 파묻어 둔 비상식량을 모두 파먹어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까마귀들에게 자비를 베풀었기에 대자연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그들은 숱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로의 몸을 로프로 묶었고 지옥과도 같은 눈 비탈을 무사히 올라 정상에 섰다. 곧바로 먹구름이 몰려오고 제트기류가 몰아쳤으나 무사히 탈출했다.

세계 최단 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의 대기록을 세운 김 대장 뒤에는 이처럼 서 대원이 오랫동안 함께했다. 김 대장이 세기에 능하다면 젊은 서 대원은 체력이 강했다. 환상적인 파트너였다. 20일 김 대장이 에베레스트(해발 8848m)에 올라 무산소 14좌 등정의 마침표를 찍을 때도 함께였다.

그러나 그 후 운명이 갈렸다. 하산 길에 서 대원이 탈진 증세를 호소했다. 걸음이 느려지자 셰르파들이 그를 해발 8050m의 캠프4까지 부축해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장을 포함해 3명의 동료가 텐트에서 수면과 휴식을 취하고 21일 오전 깨어난 뒤에도 서 대원은 일어나지 못했다. 대원들이 흔들어도 의식이 없었다. 한때는 김 대장을 능가할 것으로 여겨졌던 그는 그렇게 소리도 없이 숨졌다. 대한산악연맹은 고산 증세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맹은 셰르파 11명을 동원해 23일까지 시신을 해발 6400m까지 내린 뒤 헬기로 카트만두로 옮길 예정이다.

두 사람은 부산지역 산악회를 중심으로 호흡을 맞췄다. 부산산악연맹 홍보성 회장은 “창호가 가장 믿는 파트너는 성호였다. 이번에도 성호가 창호를 도와주러 간 것이었다. 체력은 성호가 더 좋았는데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 출신인 서 대원은 부경대 재학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 가난한 형편에 막노동을 하며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그러나 산악부 활동엔 열성적이었다. 홍 회장은 “틈틈이 학비와 용돈도 벌고 산악회 활동도 하느라 휴학을 자주 했고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성실하고 성품이 훌륭했다”고 회고했다.

히말라야 12좌를 오른 상태인 그는 올해 2개의 봉우리(K2, 브로드피크)를 남겨 놓아 김 대장이 세운 세계 최단기간 14좌 완등 기록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2006년 에베레스트를 한 차례 등정했기 때문에 이번 등정이 기록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 상태였다. 2012년 체육발전 유공자로 맹호장을 받았다. 미혼인 그는 어머니와 남동생을 남기고 돌아오지 못했다. 산악인들은 “무산소로 8000m 지역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만큼 무산소 등정은 위험하다. 김 대장의 대기록은 가장 아끼던 후배이자 동료의 죽음으로 슬픈 기록으로 남게 됐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채널A 영상]에베레스트 등정 기쁨도 잠시…서성호 대원, 하산길 사망
[채널A 영상]산악인 김창호,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
#서성호#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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