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기자와 따로 만난 김 여사는 “남편은 그 책을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보자기에 싸서 가방에 담아 늘 지니고 다녔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남편이 1960년대 말 책을 구했다고 기억했다. 어느 날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고 정병욱 서울대 교수와 함께 지방에 다녀오더니 “돈을 좀 마련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얼마를 주고 샀는지는 모른다. 반 년 치 월급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고 짐작할 뿐이다.
남편과 그 책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서울 휘문고를 다닐 때 신라 화랑에 흥미를 느껴 연희전문(현 연세대) 문과에 진학했고, 역사학을 전공했다. 그런 손 교수였기에 화랑과 낭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담은 삼국유사 연구를 필생의 과제로 여겼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늘 시간이 빠듯했다. 삼국유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여유가 없었다. 1987년 정년퇴임하고 2002년 연세대 박물관 초빙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삼국유사 연구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손 교수는 숙원을 이루지 못하고 2010년 세상을 떠났다.
김 여사는 “남편은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써서 연세대에 기증하려고 했다”며 “비록 그렇게는 못 했지만 평생 함께한 학교에 이 책을 기증해 후학들이 연구할 수 있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에 김 여사는 거액을 제시하며 책을 사겠다는 유혹을 모두 뿌리쳤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한국학 분야의 연구를 좀 더 활성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김 여사는 이날 이 책 외에도 평양지역 장로교 선교사가 소장했던 태극기 1점과 고문서 22점, 도서류 5319책, 토기·도자기류 35점을 함께 기증했다. 1953년 손 교수와 결혼한 뒤 57년 만에 남편을 먼저 보낸 김 여사. 남편이 분신처럼 여기던 ‘보물’까지 이날 모두 떠나보냈다. 섭섭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남편의 뜻을 잘 이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어렵던 시절 남편이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던 학교에도 빚을 갚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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