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시인 도명학씨 회고… 연말에 수기집 펴내기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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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 500원 들고 가족 몰래 나선 탈북길… 손내미는 딸 보고 200원 숨긴 죄책감에…

체제 비판적인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자강도 강계의 감옥에서 3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탈북 시인 도명학.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 이사로 제78회 국제 펜(PEN)대회에 참가한 그는 2006년 8월 아내와 세 딸을 남겨두고 탈북하던 날의 이야기를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시인은 연말에 이 사연을 수기집에 담아 펴낼 예정이다.

화창한 아침. 중국과 인접한 양강도 혜산의 나의 집은 분주했다. 얼마 전 감옥에서 출소한 내가 평양에 있는 이모 댁에서 몸을 추스르려고 집을 나서는 날이었다. 가족들은 몰랐지만 난 이날 탈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평양에서 흠 잡히면 안 된다”며 장마당에서 사온 고급 양복을 입혀주고 김일성 배지도 달아줬다. 죄책감 때문에 뱀가죽을 입는 것 같았다.

내륙 쪽으로 걸어가다 압록강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갑자기 여덟 살 막내딸이 골목에서 나타났다. 딸은 나를 보고 “아빠∼, 돈” 하며 웃었다. 내게는 압록강까지 가는 차비가 북한 돈으로 500원이 있었다. 남은 30km를 걸어서 가기로 하고 딸에게 300원을 줬다. 아이스크림 두 개 값인 200원은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 것이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딸을 뒤로하고 걸었다. 숨이 막히는 한낮의 열기, 그리고 죄책감으로 몽롱해졌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는 나오지 않았다. 무사히 강을 건너 탈북을 도와준 중국인 집에 도착해 양복을 벗고 200원도 버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스크림 두 개 먹겠다고 막내딸에게 사람 같지 않은 깍쟁이 짓을 하다니….’

아내는 기차역 방향이 아닌 곳에서 나를 봤다는 딸의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결국 내 소식이 끊기자 국가안전보위부에 찾아갔다. “우리 남편이 없습니다.” 아내의 자진 신고 덕분에 가족들은 고초를 피할 수 있었다.

1년 전 아내와 세 딸이 다행히도 탈북에 성공해 같이 산다. 열네 살이 된 막내딸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막내딸이 잘못해도 야단을 치지 못한다. 딸은 나에게 아직도 ‘아이스크림 두 개의 권력’이다.

경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탈북작가#도명학#수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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