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고 왔던 그들, 한 통 전화에 희망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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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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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간 34명 목숨 구한 한강다리 ‘SOS 생명의 전화’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기’.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전화를 유도해 마음을 돌려먹게 하려고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지난해 설치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기’.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전화를 유도해 마음을 돌려먹게 하려고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지난해 설치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오늘 월세를 못 냈습니다. 집주인은 나가라고 하는데 일거리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는 죽으려고 여기 왔습니다.”

이모 씨(36)는 서울 마포대교 중간에 있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담사는 “일단 쉴 곳이 필요할 테니 노숙인 관련 시설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이 씨는 “싫다. 그냥 자살하면 그뿐”이라고 대꾸했다. 상담사는 재빨리 119로 신고했다.

이 씨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농약을 마셨지만 살아났다, 우울증 치료를 받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어렵다….” 상담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며 설득했다.

수화기를 계속 들고 있는 사이에 119 구급차가 도착했다. 이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국생명의전화 상담팀은 건강가정지원센터로부터 치료비와 생활비를 어떻게 지원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고, 치료를 다시 한 번 받아 보자고 설득했다.

이 씨가 새롭게 살아가도록 만든 것은 ‘SOS 생명의 전화기’다. 자살을 막기 위해 지난해 7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마포대교와 한남대교에 4대씩 설치했다. 수화기를 들면 전문상담원과 연결되면서 위치를 자동으로 알려준다.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들이 현장을 쉽게 찾는 데 도움이 된다.

한강대교에서도 이 씨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장병 1명이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를 앞둔 15일, 강물에 몸을 던졌다. 군 생활에 대한 공포가 원인이었다. 그는 몸이 가라앉지 않자 다시 자살하려고 다리 위로 올라왔다. ‘SOS 생명의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도 상담사의 설득으로 마음을 되돌렸다.

자살 시도자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이유도 여러 가지다. 사업 실패, 가정불화, 외모에 대한 불만, 성적…. 죽음을 생각하던 10대들도 한강 다리를 찾는 경우가 있다.

죽기로 마음먹었다가 왜 전화를 거는 걸까. 전문가들은 “혹시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겉으로는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연을 하소연하려는 마음도 있다.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SOS 생명의 전화기’ 앞에 전문상담사가 24시간, 365일 대기하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 한 해 동안 34명이 새 생명을 찾았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이달 초 한강대교와 원효대교에도 각각 4대의 전화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다음 달 말에는 부산 광안대교, 연말까지는 강원 춘천의 소양1교에도 설치할 계획이다. 삶을 포기하려다가 따듯한 말 한마디에 마음을 바꿀지 모를 이들을 위해서.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신무경 인턴기자 고려대 철학과 4년
#자살#한강#마포대교#생명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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