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다 가블러’로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이혜영 씨는 제작발표회 도중 종종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고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연극배우 이혜영입니다. (취재진이) 정말 많이 와 주셨군요. 다시 연극 무대에 설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배우 이혜영(50)이 1999년 ‘햄릿 1999’ 이후 연극 무대에 13년 만에 복귀한다. 다음 달 2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는 입센 작 ‘헤다 가블러’(박정희 연출)의 주인공 헤다 역을 연기한다.
1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공연 제작발표회에서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 차림으로 참석한 이혜영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자기소개 차례가 되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느린 어조로 자신을 ‘연극배우’라고 소개했다.
그는 “뮤지컬 배우로 시작했지만 다른 장르에서 만나기 힘든 배역, 좋아하는 배역을 연극 무대에서 많이 했기 때문에 연극배우라고 생각한다”며 “무대를 떠나 있다 보니 점점 더 무대에 서기가 두려웠지만 나에게 꼭 맞는 배역이라는 말에 (무대에 설)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혜영은 1981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데뷔해 무대와 스크린 활동을 병행했고 ‘사의 찬미’(1988년)의 윤심덕 역과 ‘문제적 인간, 연산’(1995년)의 장녹수 역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헤다 가블러’는 현대 연극의 아버지라는 입센의 작품으로 19세기 노르웨이 상류계층의 딸로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욕망이 강한 여성인 헤다 가블러가 신분에 따른 속박과 주변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에 못 견뎌 하며 파멸해가는 이야기다.
해외에선 ‘여자 햄릿’이라 불리며 자주 공연이 이뤄졌지만 국내에서 프로 무대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출가 박정희 씨는 “헤다 역을 맡을 배우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 공연은 이혜영이라는 배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혜영이 곧 헤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헤다는 남편인 테스만의 성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의 성인 가블러를 고집한다. 이혜영은 헤다라는 역에 대해 “가블러는 ‘이상’이고 테스만은 ‘현실’이다.
헤다는 현실에 적응 못하는 여자, 현실에 길들지 않는 여자다. 헤다 가블러는 누구인가. 그 이름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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