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브랜드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만 국제 과학기술계에서 일본의 파워는 여전합니다. 우리는 일본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어요.”
홍정국 재일한국과학기술자협회(재일과협) 회장(65·사진)은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대한 한국 과학계의 평가절하가 아쉽다”며 “한국 과학기술이 질적으로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서는 미국에만 치우친 한국 과학계의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일과협은 일본 학계와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교수와 과학기술자들의 네트워크다. 정기적으로 모여 학술 세미나를 열고 동포들의 최신 연구동향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1983년 발족 당시만 해도 몇 명에 불과하던 회원이 지금은 1만1000여 명으로 늘었다.
재일교포 3세인 홍 회장은 재일과협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가 재일과협을 결성하기로 결심한 데는 재일교포로서의 슬픈 과거가 숨어 있다.
“1975년 도호쿠(東北)대에서 농학박사를 취득한 뒤 일본인들의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싫어 고국으로 갔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한국말이 서툰 재일교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오히려 재일교포를 북한 스파이로 보는 데다 일본 못지않은 차별이 있었지요.”
4년간의 괴로운 고국 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돌아온 홍 회장은 결심했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재일교포’라는 제3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기로.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일교포만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재일과협을 결성했다. 그는 “재일교포 신분을 감추고 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모여 지금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일본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네트워크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홍 회장은 “일본 내 거의 모든 조직이 고령화하고 있지만 재일과협만큼은 젊고 싱싱한 조직”이라고 했다. 실제로 재일과협은 20∼40대가 48%로 절반을 차지한다. 20대 재일교포 가입이 꾸준히 늘고 있고 1980, 90년대에 일본으로 유학을 와 정착한 이른바 ‘뉴커머(new comer)’ 회원도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과거에 기계·조선 분야에 치중돼 있던 회원들의 연구 분야가 2000년대 들어 전기전자 정보통신(19%), 금속·재료(16%), 의료 의학 바이오(13%)로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재일교포 과학기술자 중에는 숨어있는 진주가 많습니다. 고국이 적극적으로 시야를 넓혀 해외 교포 인재를 발굴하는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고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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