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만 잡으면 눈빛 반짝… 딴사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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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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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홀트학교 지체장애 아이들 풍물반 ‘우리랑’

13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홀트학교 풍물반 ‘우리랑’ 교실에서 교사 강정근 씨(43·오른쪽)와 정신지체아들이 영남사물놀이를 흥겹게 연주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3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홀트학교 풍물반 ‘우리랑’ 교실에서 교사 강정근 씨(43·오른쪽)와 정신지체아들이 영남사물놀이를 흥겹게 연주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사진을 찍어달라며 칭얼대던 18세 성웅이가 꽹과리 소리 한 번에 투정을 멈췄다. 북과 채를 집어 들더니, 언제 투정했냐는 듯 진지한 얼굴을 한 채 북을 힘껏 내리쳤다. “퉁, 퉁∼.” 둔탁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풍물반 교실을 가득 메웠다.

일주일에 세 번,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홀트학교에 전통악기의 노랫가락이 울려 퍼진다. 정신지체아로 이루어진 풍물반 ‘우리랑’의 솜씨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정서장애 및 발달장애 청소년 30여 명이 모인 우리랑은 올해로 11돌을 맞는다.

초등부와 중고등부 학생들이 함께한 13일 수업. 24명의 단원이 ‘영남사물놀이’를 연주했다. 평소 수업은 물론 일상생활에서조차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이었지만 5분여의 연주 동안 누구 하나 딴청을 부리지 않았다. “이렇게 연주하려면 길게는 두 달을 연습해야 합니다.” 연주를 마친 풍물반 교사 강정근 씨(43·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채를 던지고 악기를 제멋대로 치죠.”

1999년 홀트학교 교사인 강 씨가 지체장애아로 구성된 풍물반을 만든다고 했을 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 5명이 잔디밭에 모여 플라스틱 악기로 연습할 때는 “저래서 뭐가 되겠느냐”며 혀를 차는 이가 많았다. 이 5명이 1년간 연습을 거쳐 교내에서 첫 공연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놀랐고, 이들도 할 수 있다는 관심을 보였다. 강 씨는 “잠깐 집중하는 것조차 힘든 아이들이 하나의 곡을 연주해내는 것을 보고 다들 감동했다”며 “그 다음부터는 동아리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고 웃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단원이 20여 명으로 늘어나자 강 씨는 외부강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수업시간도 일주일 중 하루에서 사흘로 늘렸다. 학교는 ‘진짜 악기’들은 물론 교실까지 지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변화였다. 쉬는 시간이면 정신없이 떠들고 바닥을 뒹구는 아이들이지만 악기를 잡으면 눈빛이 변했다. “덩덩 쿵더쿵” 같은 어려운 박자도 며칠만 가르치면 소화해냈다. “악보는 없어요. 몸으로 가락을 익히는 거예요.” 강 씨가 말했다. 그렇게 한두 달 5∼10분 분량의 곡을 연습하면 아이들은 어느덧 어깨를 들썩이고 추임새까지 넣으며 악기를 연주했다.

“재밌어요. 풍물반 들으려면 나 빨리 달려와요.(풍물반 수업 들으려고 빨리 왔어요)” 4년 넘게 풍물반을 다니고 있는 조찬희 군(14)이 말했다. 꽹과리 잘 치느냐고 묻자 “네!” 하고 씩씩하게 말했다. 강 씨는 “원래 대화를 잘 못하거나 사람과 사귀지 못하던 아이들인데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개방적이고 밝아졌다”고 흐뭇하게 말했다. 실제 이날 교실을 가득 메운 아이들은 여느 청소년들과 다름없이 떠들고 웃고 장난을 쳤다.

우리랑은 올해에만 두 개의 장애청소년 예술제에서 수상했다. “졸업한 아이들이 몇 년 만에 찾아와도 가락을 기억해요. 얼마나 기쁜지…. 앞으로 계속 아이들과 가락을 함께할 겁니다.” 강 씨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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